Page 36 - 메타코칭 공토 2024-03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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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코칭 인지훈련                                                                     챌린지 2024-03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메타기억력            - 중심 단어 5개를 적고 내용을 줄거리로 만들어 본다.


                                                         승전무




                  고려 충렬왕 때 시중 벼슬을 하던 이혼이란 사람이 귀양살이를 하던 중 바다 위로 떠내려오던 큰
               나무  도막을  얻어  그것으로  북을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굉장하였다.  이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춘

               것이 북춤이 되었다.

                  그  후,  궁중에서  큰  잔치가  있을  때  북춤을  추었는데,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큰  북을  놓고

               백제의 가요인 ‘정읍사’에 맞춰 북을 두드려 가며 춤을 추었다.
                  원래  궁중  무용이던  북춤을  통영  지방에서는  삼도수군통제영의  잔치에서  추게  하였으며,

               군영에서  추던  것이라는  뜻으로  승전무라  하였다.  그  가운데에  북춤이  승전무라는  이름으로  1968년

               중요 무형 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청색,  홍색,  흑색,  백색  활옷을  각각  입은  4명이  가운데  놓인  북을  울리며  ‘영산회상’을  반주

               삼아  춤을  추고,  ‘지화자’하며  창(唱)을  한다.  춤추는  4명의  주위를  12명이  둘러싸고  서서  노래를

               부른다.
                  북  소리에  맞춰  흩어지고  모여드는  춤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  이  춤의  특징이며,  북이  한  번

               울리면 모이고, 두 번 울리면 나아가고, 세 번 울리면 물러난다.

                  승전무는  궁중에서  추는  춤처럼  우아하고  예술성이  뛰어나며,  독특한  향토적  특색을  보여준다.
               또한 의상이나 춤사위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경쾌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승전무를  추게  했고,

               전쟁에서 이기면 승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추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나  충무공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승전무를  추었는데,

               1968년 문화재로 지정할 때는 북춤만 추다가 1987년부터는 칼춤도 추었다고 한다.

                  칼춤은  신라의  화랑인  관창이  추던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하며,  가면을  쓰고  양손에  칼을  쥐고

               추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기녀들이  추는 춤으로 변형되어 오다가 북춤과  함께 군영에서 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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