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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엽 작가의 ‘환시인간’이라는 주제의 출발점은 ‘환시 미술’이라는 장르로 보인다. ‘환시’라는 말은 사전적으 로 시각영역에 나타나는 환각의 일종으로, 실재하지 않는 물체나 도형 그리고 경치나 동물 또는 사람의 얼굴이 나 모습 등이 보이는 것을 말한다. 환시작용이 일어날 때 인간은 다소 의식장애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러한 의 식장애를 가진 인간은 그릇된 행동을 할 때도 스스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으며, 행동에 대한 본질 보다는 다른 이유나 의미를 추가해가면서 행동을 방어하고, 정당화 한다. 작가는 인간이 가장 이성적이다고 판 단할 때 동시에 의식장애가 일어난다고 믿고 있으며, 오히려 가장 비이성적인 존재로써 본질을 왜곡하는 기괴 한 형태의 인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작가가 만들어내는 ‘환시인간’이다.
조형폭력
잘나가는 조각가, Fun 한 작업을 진행하는 젊은 작가로 불리우는 김현엽 작가는 그의 순수한 외모만큼이나 폭 력에 저항 하지만, 작품은 폭력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그의 작품은 잘 다듬어진 조각이 아니라 조형적 폭력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잘 만들어진(마치 공산품과 같은) 피규어를 들쑥날쑥 더해가면서- 정리된 조형을 역설적으로 파괴하려는- 조형적 폭력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기괴함을 만들어내지만 오히려 친근하고,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서 관람자들의 시선을 더욱 집중하게 하는 힘을 발산한다.
피규어와 환시인간
피규어는 우리 인간의 동경, 즐거움의 대상일까? 우리 인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의 축약일까? 작품에는 원피 스, 일본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즈니의 캐릭터, 아미맨(군인병정), 다수의 인형이나 장식이 사용되고 있다. 그 속에는 울퉁불퉁한 인간의 형상을 한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덩어리는 작가의 모습에서 풍겨오는 이미지 와 비슷한 순수한 덩어리이다. 덩치는 산(山)만하지만 그의 얼굴에 머금은 모습이 앳되고 순진한 것처럼, 이 덩 어리는 뭔가 근원적인 인간의 덩어리처럼 보이며 묘하게 작가의 모습과 닮아있다.
토이보이는 작가의 덩치와 닮아있는 단순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조로운 실루엣의 내부에는 단순 한 선들로 이루어졌지만, 혼잡하게 보이는 다양한 이미지를 복잡하게 섞어두고 있다. 그리고 이 단순한 실루엣 은 폭력을 상징하는 이 세상의 도시와 온갖 무기를 들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선은 폭력을 가둔 순진한 실루 엣이지만 내부에는 많은 폭력적 사회의 이미지들이 얽혀있다.
Hack Man, Gang Man, Army Man의 작품들은 이미 규모에서 관람자를 압도한다. 그리고 한 작품이 품고 있는 피규어들은 수백 개가 넘는다. 하지만 그 피규어들이 붙어있는 모체는 둥글둥글하면서 거칠고 어렴풋한 인간 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형상이 작가가 말하는 환시인간인가? 아니면 환시인간으로 되기 전의 순수한 본질적 인간의 형상인가? 답을 찾으려는 관람객의 사유는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다림으로 바뀐다.
오신욱건축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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