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EAM 201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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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뜻을분별하기위한기도회가열 렸다 1차는 호주에서 2월 10일부터 17 일까지 프랭크 휴톤(총재)과 존 신톤 (중국대표) 그리고 각 국가 대표 대표 5명이 기도하였다 “너희의 줄을 길게 하며 너 너 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 54:2 3)” 말씀을 받고 최초의 부르심인 중국사 역을잊어서는안된다는것을확신하 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중국 내에서만 활동해왔다면 이제는 기도 문서사역 방송사역을 통해 중국 외부에서 지속 적으로 중국을 섬겨 나갈 수 있었다 뿐 만아니라중국주변에있는동아시아 지역을 새로운 사역의 장으로 인식하 게 되었다 동아시아 곳곳에 흩어져있 는 1 000만 중국인 역시 복음을 들어 본 적 없는 ‘내지’였고 중국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시아인도 복음을 알지 못하 는 사람들이었다 태국북부와 남쪽의 소수민족 중부의 13개 성의 미전도 지역 필리핀 민도르 섬과일본북해도등이사역지로떠오 르게 되었다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 네시아 대만 등 현지에 있는 중국교회 들도 CIM에 협력사역을 요청하였다 이 곳은 이미 다른 선교단체들이 사역을 하고있는곳이었기때문에중간에사 역지가 변경된 CIM은 함께 협력해서 사 역할 때 조심스러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1951년 11월 17일부터 12월 1 1 1 1 1 1 1 일까지 영국 본머스 Bournemouth 에서 회의가 회의가 열렸다 이 이 회의가 회의가 중요한 이유 는 총재 및 각국 대표들과 선교지 대표 대표 그리고 지역 감독 등 총 25명이 참석하 여 CIM선교회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때 본부를 싱가폴 로 옮기는 것과 중국내지선교회CIM를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해외 선교회로 변경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1951년부터 철수를 시작한 선교사들 은 홍콩에 머물면서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부르심을 기다렸다 어떤 선교사들 은새로운사역지로가서사역을시작 했고 어떤 선교사들은 CIM를 떠나게 되 었다 이런 다양한 선택의 시간 동안 총 재였던 프랭크 휴톤은 1951년 건강으로 총재자리를 사임했고 오스월드 샌더스 가 1955년에 총재를 수락했다 이 과도 기동안아놀드리가그자리를감당했 다 아놀드 리는 중국 대표였던 존 신톤 이 이 떠난 상해본부를 지키며 선교사들이 무사히 철수할 수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허드슨 테일러의 열정3
호주 칼로라마에서 1951년 2월10-17일까지 기도회에 참석한 대표들 (아래 왼쪽 2번째는 중국대표 존 신톤 3번째는 프랭그 휴톤)
오스왈드 샌더스 총재 1955-1969
아놀드 리 상해에서 마지막까지 상해 본부를 지키며 존신톤이떠난자리를 감당하였다 1952년 떠날 때 까지 상해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