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일산교회 60주년사 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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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강명석은 1935년 6월 미국 남부 테네시주 내쉬빌시에 위치한 명문                                                                                             기로 파견된 많은 미국 선교사들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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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사립대학교인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신학사학위를 받고 미국교회를                                                                                                   이 그 원인이 되었다. 1950-60년대는 그
      일 의 교 회 도 그 산 스 리
                                   순방하는 길에 테네시주 내쉬빌에 있는 웨이버리 벨몬트 그리스도의                                                                                                 리스도의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파견

                                   교회(Waverly Belmont Church of Christ)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환                                                                                   되기 시작한 본격적인 시기였다. 이들 선
                                   원하였다. 그는 1935년 6월 15일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사들은 한국인 사역자들과 협력하여

                                   교회에 대해서 더 깊게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프리드-하드만 대                                                                                               그리스도의교회를 이 땅에 뿌리 내리도
                                   학(Freed-Hardman College)에서 1년 동안 환원신학을 공부하였다.                                                                                       록 하는데 힘을 썼다. 여기서 간과할 수
     창 경 배 립                                                                                                         그리스도대학교 설립에 기여한 최수열 선교사(앞줄 가운데 모자 쓴 사람)의 1972년
                                   이처럼 그는 미국 유학을 통해서 환원운동을 알게 되었고 결국 감리                                              서울방문 환영모임. 최선교사의 오른쪽이 부여교회를 설립한 이흥식 전도자임.        없는 사실은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그리
                                   교를 떠나 그리스도의교회 전도자가 되었다.                                                                                    스도의교회가 재정적인 부분에 큰 힘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

                                     한국에 귀국한 강명석은 1936년 12월 6일(주일) 경상남도 울산에서                                                                  고 그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그리스도의교회가 다시 한 번 체계를 잡
                                   첫 교회를 개척하였다(지금의 울산교회). 그는 이후 1937년 서울에 올                                                                   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활동한 대표적인 선교사는 1954년 5월에

                                   라와서 신당정교회, 동교정교회, 대현정교회를 개척하였고, 다시 경북                                                                      입국한 리치슨(Dale Richeson), 그리스도 대학교와 KCU농장 설립
                                   에 경주교회(1937), 경남에 진양잔성교회(울산군 수동면 반천, 1938)                                                                 에 크게 기여한 최수열(L. Haskeil Chesshir, 1916-2003)선교사 등

                                   를, 그리고 인천에서 송림동교회(1940)를 개척하였다. 그가 마지막으                                                                    이 있다. 이들 외에도 1950년대에 많은 선교사가 입국하였다. 홀튼
                                   로 개척한 교회는 동방교회(경북 월성군, 1940)였다. 그리고 그는 「기                                                                  (A. R. Holton, 1957)과 하딘(Daniel C. Hardin, 1958)이 왔고, 이철
           강명석 전도자 (1890-1944)     독신보」에 “그리스도의교회”(1937.4.4)라는 글을 써서 환원운동을 한                                                                  선(William A. Richardson)은 미군으로 근무하다가 선교사로 한국에

                                   국에 소개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명석은 45세의 젊은 나이로 소                                                                     자리를 잡았다.

                                   천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교회 발전에 너무 아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교회를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한국교회에 뿌리 내릴 자

                                   격을 갖춘 유능한 준비가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강명석이 개                                                                      초기 전국 그리스도의교회 현황
                                   척한 교회는 아쉽게도 울산교회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사학

                                   자인 김세복에 의하면 강명석 사후 미국교회와의 연락두절과 전도자                                                                                          서울 지역에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는 1945년 동
                                   들의 소명감 부족으로 그가 세운 교회가 다른 교파로 넘어갔다고 진단                                                                                      석기 전도자가 설립한 내수동교회(현 내수중앙교

                                   한다. 이처럼 두 개척자들이 한국 그리스도의교회를 시작하였다. 또                                                                                       회)이며 초기에 동석기, 박선흠, 동충모 전도자가
                                   이들이 세운 내수동교회와 울산교회는 그리스도의교회 초창기 교회들                                                                                        사역하였다. 1948년엔 이흥식 전도자가 청량리 교

                                   로서 아직도 활발히 전도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회를 설립했고 1957년엔 선교부에서 효창동 교회
                                                                                                                                                              를 설립하여 초기에 강예원 전도자가 사역하였다.

                                                                                                                     내수동교회 최초 예배당                              충청도 지역엔 1950년 이흥식 전도자가 부여교회
                                   해방 후 한국 그리스도의교회                                                                                            (현 합송교회)를 설립해서 감리교회에서 환원한 한도석 전도자가 사

                                                                                                                                              역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 그리스도의교회의 본격적인 발전은 한국전쟁을 계                                                                         호남 지역엔 1952년에 강순명 전도자가 세운 광주교회(현 학동교


           48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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