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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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피난민들은 전쟁 시기에 전답과 재산을 모두 이북의 고향에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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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두고 오직 자유만을 위해 남으로 용감하게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따
    일 의 교 회 도 그 산 스 리
 라서 그들의 경제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막
                                                                                   제   2     장
 전쟁을 끝낸 국가인지라 정부라고 무슨 별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
 황도 아니었다.

 따라서 1960년대 초기 당시 서대문 문밖 북아현동 지역의 거주 환
 경은 요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집이라고는
   창 경 배 립
 나무판대기나 돌, 흙벽돌 등 손에 잡히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것으로
                                                     북아현동 시대
 형태만 집으로 만든 판자집이 대부분이었다. 수도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다. 지금 사람이라면 들어서자마자 토할 것 같은 악취 가득한 열
 악하기 짝이 없는 공중변소 하나를 여러 집이 같이 써야 했다.
                                                  (1962.1.28. ~ 1980.6.30.)
 먹어야 할 식수는 아랫마을 쪽으로 한참 내려간 곳에 있는 공동수
 도나, 봉원사 가는 길에 있는 약수터인 복주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다.

 그 보다 더 힘든 건 화장실이었다. ‘푸세식’이라 악취가 이만저만이
                                       - 교회 설립과 성장기반 확립
 아니었다. “똥 퍼!” 소리와 함께 분료 수거차가 오는 날이면 동네 일
 대는 분뇨 냄새가 진동하곤 했다.
 바로 그런 산자락인 북아현동 산1번지에 1962년 초 이영진 전도자

 와 공삼열 전도자가 공동으로 우리 교회를 세운 것이다.
 “물질적으로 어렵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주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자!”
 두 믿음의 용사가 굳게 두 손을 맞잡은 것이다. 그리고 60년의 기적

 의 역사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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