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전시가이드 2024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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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찔레
글 : 장소영 (수필가)
시골에 외가가 있다 보니 아버지와 함께 들과 산으로 돌아다니며 동식물이야 술에 담긴 알싸한 향이 멀리서부터 풍겨오면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아버지
기를 재미나게 익히고 들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이었다. 봄이면 청아한 소쩍새 께서 벌 나비가 요란을 떠는 찔레나무 덤불 밑에 뱀이 있을지 모른다며 장대
울음소리를 들으며 논둑이나 둔덕을 살피면 땅을 비집고 올라온 삘기가 지천 로 툭툭 치며 다가가 꽃을 따주시면 종일 온몸에 향긋한 꽃내음이 묻어났다.
이었지만 나에겐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두 손 시골에서 설핏 경험한 몇 번의 일로 어느 해 우리 집 화단에는 장미꽃의 자취
가득 배가 부푼 삘기를 움켜쥐고 아버지께서 까주시는 희고 솜처럼 부드러운 를 찾기 힘들게 된다. 동식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철장 속에서 공작
꽃이삭을 오물거리면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이 위풍당당 화려한 꼬리를 흔들었고, 태산목, 라일락, 여주 등 온갖 꽃나무들
이 집안을 채우고 담장 쪽에는 장미가 무성했다. 토요일 오후 혼자서 집을 보
망종 전후로는 청보리가 패기 시작하는데 모가지를 잘라다 불에 구우면 푸 는 데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찔레 넝쿨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 내 눈에
르스름한 알맹이가 말랑하고 고소하여 별미였다. 그런데 입가가 까매지는 것 는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찔레나무가 들판도 아닌 우리 집 마당에 턱하고 있
은 덤이어서 어른들이 수염 났다고 놀려대니 토라져 더는 먹지 않았더랬다. 으니 얼마나 기뻤겠나.
그 중 일품은 논밭 가장자리에 홀로 자리를 잡거나 산기슭에 덤불을 이룬 찔 망설일 것도 없이 왈가닥 딸내미는 동네 꼬맹이들에게 자신이 맛본 달달한 세
레나무다. 보양식 청머구리를 잡기위해 걷다보면 갈증이 났는데 아버지께서 계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가시는 듬성하고 많은 새순들이 연하디 연한 모
는 찔레순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손에 쥐어주셨다. 연하고 물기가 많으 양새로 여기저기 삐죽 나와 있었으니, 옳거니 됐다 싶었다. 골목에서 놀던 친
며 아삭하고 달큼한 맛이 나니 목마름에 좋았다. 가시가 촘촘히 박힌 찔레넝쿨 구들을 우르르 몰고 와 먹는 시범까지 보이며 새순을 꺾어 친구들에게 고루
사이로 쑥 올라온 새순을 꺾으려면 아주 조심조심 묵은 가지를 제쳐야만 한다. 나누어 맛보게 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찔레순 잔치는 성황리에 펼쳐졌고 흐
자칫하면 한순간에 손을 할퀴어 피가 배어나오는 수난을 겪게 되니 말이다. 뭇해진 우리들은 다음 기회를 약속까지 했다.
꽃이 필 때면 주위의 논에는 물이 채워지고 올벼 모내기를 하는 곳도 드문드 그런데 오월 어느 날. 화단에 물을 주시던 부모님께서 자꾸만 “이상하네. 위쪽
문 있었다. 하얀 찔레꽃 향기는 어느 향수보다도 강하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 에만 피고 아래쪽은 꽃봉오리도 없네.”하시는 것이다. 내가 봐도 담장 위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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