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백덕현 무태(無態) 드로잉전 2022. 9. 24 – 10. 5 더아트9, 정수아트센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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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회복을 위한 무태(無態)드로잉




                 눕혀진 캔버스에 물감 덩어리를 얹는다. 물감의 개별의 색으로 짜서 칠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덩어리째 둔다. 가장자리 어느 중간 즈음에 자석 팔레트와 실내용
                 팔레트를 맞댄다.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화가의 손에 들린 팔레트와 맞댄 삼각형 팔레트가 있다. 화가의 손을 따라 캔버스 너머의 팔레트를 따라 물감이 펼쳐진다.
                 속도감 있게, 때로는 유려(流麗)하게, 멈추다가 가다가를 진행시킨다. 캔버스 너머가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물감이 펼쳐지고 섞이고 흩어지는 감각을 집중한다. 어
                 느 순간에는 미리 자리를 잡아놓았던 물감 덩어리들은 위치를 잊고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의도하지만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기대하는 ‘무태(無態)드로잉’이
                 다.


                 형태(形態)는 생김새와 모양이다. 형(形)은 가시적이지만 태(態)는 드러나지 않은 마음생김이다. 물감의 흩어진 상태를 모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김새를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원과 속 깊이 묻힌 잊혀진 무엇에 대한 탐구 드로잉이다. 기억이나 경험의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속성이나 본래 지니고 있던 그것
                 에 대한 접근이다. 그래서 백덕현은 생김새와 모양이라는 의미의 형태(形態)에서 모양의 태(態)가 지닌 능동성에 집중한다. 주어진 생김의 형(形)에서 어떻게 변화
                 될지 모르는 어떤 모양의 태(態)를 찾아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결과에 대해 ‘무태(無態)드로잉’이라 한다.


                 상실의 가치를 찾아간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의 분실과는 다른 영역이다. 상실은 가치 있는 대상과의 단절이나 박탈의 구성이다. 물건이나 형태가 있는 무엇을 잊었
                 거나 손실했을 때의 상실이 아니라 무형의 것, 마음의 것, 감정의 것과의 단절이나 박탈에 의한 상실을 이야기한다. 백덕현의 회화에는 상실의 본래 모양에 대한 규
                 명 노력이다. 소중했던 혹은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가치 회복이 아니라 프로이드가 발굴해 낸 무의식의 영역과 비슷한 개념이다. 조금 더 영역이 확장된 자신의
                 가치영역에서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모양 찾기다.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잊지 않는다. 손이 기
                 억하고 있거나 생각이나 관념의 영역을 벗어나길 희망한다.


                 그가 추구하는 ‘무태(無態)드로잉’은 손으로 그리는, 학습에 의한 익숙한 방법에서 벗어나 있다. 중세시대 전쟁터에서 성벽을 향해 날리던 기구에 실린 거석(巨石)처
                 럼 물감 덩어리를 날리기도 한다. 손으로 내리친 힘에 가중이 붙어야 가능한 물감 날리기에는 손보다 힘센 망치를 사용한다. 기구에 의해 날아가는 물감이 캔버스
                 에 안착한다.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 예측이나 가늠이 불가능하다. 물감을 날리는 속도감에 인위를 가할 뿐이다.

                 주석 튜브에 가득한 물감을 터트리기도 한다. 날아서 안착하는 색의 결과가 아니라 튜브에 갇혀 있다가 터지는 압력에 의한 분산과 확산의 실험이다. 여기 덧붙여
                 때로는 바람 가득한 풍선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간다거나, 떨어지는 낙엽의 길을 눈길로 좇아가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이미
                 인위(人爲)를 벗어난 본래의 상실감 회복이다. 상실은 극복이 아니라 회복의 영역이다. 이것에 대해 그는 ‘춤추는 아리랑’이라 하였다.

                 던져지고, 터지고, 흩어지거나 모아지거나 하는 드로잉은 결과의 형(形)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의 지닌 본래의 모양에 대한 탐닉이거나 탐구가 된다. 실험이 아니라
                 회복과 극복에 대한 사유(思惟)의 영역이다.




                                                                                                             글 : 박 정 수 (정수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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