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유미정 초대전 8. 14 – 8. 27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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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그림에는 유머가 숨어 있다.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다. 그 유머는 캔버스의 숨구멍이다. 난처하고 복
잡한 현실을 웃고 가라는 숨구멍이다. 작가는 그 유머를 숨겨 놓았다. 마네킹 효과 같은, 꼬리 방향이라든
가, 발굽 위치라든가, 짧은 다리라든가 하는 것들로,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그려 넣지 않은
캔버스 십 분의 일 크기의 말 한 마리가 서 있기도 한다.
말은 확성기가 되고 나머지 여백은 문장이 된다. 그의 말그림 작업의 말은 이제 사람의 말이 되어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 말이 될 때까지…...말이 말이 되기 위해 말(horse)은 사람의
말(language)을 또박또박 배운 것이다.
그림에서 형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형태를 구성한 내면을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그림을 감상하는
묘미인데, 작가는 그 묘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적용되겠지만 유미정 작가의 작품은 음악적 요소가 가득하다. 배경 작업에서 이미
멜로디를 깔아 놓고, 그 위에 귀여운 뿔을 달거나, 엉덩이에 새 한 마리를 얹히거나, 오선지 같은 금색 실을
늘이거나, 8분 음표 같은 리듬 작업을 한 흔적이 면밀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작품에서는 오보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경험도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오프닝 콘서트에서 피아노 반주와 소프라노로 들려준 창작곡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림에서 질감 요소가 어떻게 표면적으로 나타났느냐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작가의 지향점이 숭고하
고 진실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보는 이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화가가 형체에 의지하지 않고 작업하는 것
은, 시인이 언어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낸 문장과 같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자각하는 현재를 직시하듯, 화가의 그림은 현재, 지금(NOW)에 있어야 한다. 좋은 그림
은, 그림을 보고 있는 현재의 나를 투영해 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절벽의 끝자락에
선 것처럼 생각에 생각이 아닌, 깨어있는 의식을 담금질하는 시점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경험이 쌓이면 덜어내는 일이 시작되기 마련인데, 유미정 작가는 여백을 과감하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
여백은 앞서 말한 것처럼 확성기, 내지는 마이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 가지 색으로만 밑 작업을 한 작
품 같은 경우에도 고루할 것 같은 우려를 말끔히 덜어내고 고급진 대화체로 맞이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복
주머니 속에는 당근 초콜릿이 몇 개 들어있을 것 같다. 스포츠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힘을 뺄 줄
알면, 그때가 절정이라는데, 유미정 작가는 적절히 힘을 빼고 있었다. 더 적극적인 교감을 유도하고 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장면에서 책장 너머 제삼세계에서 접근한 아버지(쿠퍼)와 딸(브랜드)과 시계 초침으
로 교감하는 장면처럼 그림을 향해 손가락 하나를 뻗어야 할 것처럼 말이다.
“말아 다락같은 말아” 정지용의 시가 떠오른다. 육안으로 보는 현상의 그림이지만,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
도 없는 말이 나에게 말 걸어온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전시장에서 그림에게 먼저 말 건네 보
기를 바란다. 다른 누구의 말도 아닌 자신의 말을 찾기를 바란다.
말이 보였다.
아니 말이 들렸다.
말이 말을 해주고 있었다.
horse, space 97.0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 지 이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