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박광린 개인전 2025. 9. 26 – 10. 1 아트프라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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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 번 나 자신과 마주했다.
20세기 추상 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1903~1991). 오래전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은
신선한 감동은 여전히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던 그가 1940년대부터 도시의 낡은 벽, 흠집과
낙서 등을 추상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과 사진가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그의 혁신적 감수성은 동시
대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현대사진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어쩌면 내 안에 흐르는 사진 기질 또한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낯섦과 익숙함’은 특정한 기법이나 소재에 얽매이지 않았다. 13년 전 촬영한 이미지부터 최근 작품까지 시기와 맥락은 다
양하다. 처음엔 소외 지역의 골목 풍경이 주요 모티브였지만 최근에는 소재의 시각적 구성을 중심으로 일부 이미지의 중첩과
회화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따라서 전형적인 추상이라기보다는 회화적 패턴과 구성을 기반으로
사물의 본질을 재조명하고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시선을 반전시켜 새로운 느낌의 경험을 제안하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때로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평면처럼 보이지만 감성
과 사유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나의 콘셉트 도입은 단순한 표현 기법의 변주가 아니라 사진의 본질적 의미와
미학적 실험으로서 비구상 사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어느 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보다
불현듯 마주한 낯섦을 통해 비로소 생각에 잠긴다. 무심코 지나치던 풍경이 어느 순간 새롭게 다가오는 것처럼 추상적인 사진
또한 그렇게 사유의 장을 열어준다. 생각하는 사진, 생각하게 하는 사진, 모두가 낯섦과 익숙함이 반복되는 그 경계에서 존재감
을 드러낸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은 결국 그 모든 것을 익숙함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과 마주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사진 성향은 변함이 없다. 그 안에 담긴
기질과 감성은 곧 나의 색깔이며 본성이다. 나에게 사진은 그림과도 같다. 이는 단순히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
라 감각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예술 행위이며 현실을 기록하기보다는 미학적 실험을 추구하려는 나의 지속적인 의지이다. 또한
회화적 이미지 안에서 나와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또 다른 낯섦을 향한
본능적 행위이다.
이번 전시는 춘천문화재단의 2025 원로예술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아직 ‘원로’라는 호칭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
면 이 또한 익숙해질 것 같다.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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