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김인자 개인전 10. 12 – 10. 18 아트프라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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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 오래도록
박 광 린 ㅣ 한국사협 자문위원
오늘의 작가 김인자는 오래전 내가 춘천의 평생교육기관 사진강좌에 출강하고 있을 때 처음 만났다. 아마 13년 전으로 기억된다. 수
강생이었던 그는 남다른 사진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야외 실습시간에도 강의내용을 수첩에 기록하는가 하면 장소를 이동할 때마
다 내 옆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이어졌던 강좌의 종강을 앞두고 있을 즈음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도내 유일의 여성사진
클럽 ‘사색회’ 가 결성되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열한 번의 ‘사색전’에 참여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작가는 십여 년 전부터 점차 사라져 가는 염전에서 놀라운 자연의 섭리 현상을 보았다. 소금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 직결되어 있기
도 한 필요 불가결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게 염전은 단지 소금만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하얀빛의 결정체를 심미
적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는 소금이 생성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관찰한 결과이다. 시간이 흐
르며 변화하는 검은 바닥 위에서 작가는 신비의 우주를 보았고 보석처럼 빛나는 별과 은하수를 보았을 것이다. 송화가루 날리는 5
월엔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보였을 것 같다. 그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엔 미묘한 설렘과 벅찬 감정으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셔터
를 눌렀을 것이다.
그뿐일까? 그의 관심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해외 각국의 염전을 찾아 독특한 색깔과 질감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서호주의 핑크빛 염전은 실제 그 이상의 아름답고 신비함을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폴란드 소금광산에선 소금 채취 연장의 흔적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당시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이를 추상적 이미지로 그려낸 작품은 마치 그림
을 촬영해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현장에서의 느낌 그대로를 전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작품 속에 배어 있다. 또한 고집스런 작
가의 집념과 열정이 낳은 작품은 보는 이에게도 하얀 소금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들어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진작품의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개중에는 주제와 표현 의도가 모호한 작품을 접할 때도 가
끔 있다. 특히 추상은 예술적 자유를 바탕으로 한 창작 영역이라 선을 그을 수 있겠지만 사진에서는 대중의 인식과 이해가 필요한
분야라 생각된다. 물론 사진과 미술의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허물어져 있고 사진의 전통적 개념이 흐려지는 틈새로 디지털 사진
의 광범위한 활용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시대적 사진의 흐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작가 정신의 정립
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반드시 정답이라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자신만이 좋은 것보다 관객도 좋은 것이 결국 좋은 사진
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인자의 첫 개인전 “하얀 기억“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하겠다. 그의 작품에선 굳이 인
식과 이해가 필요치 않으며 모호함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김인자 작가를 보면 2018년 89세에 개인전을 열어 화제가 되었던 일본의 여류사진작가 니시모토 키미코 가 떠오른다. 그도 71세에
사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누군가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 했다. 82세에 첫 개인전을 갖는 작가는 가장 빠른 결
정을 했다. 그의 작품은 매우 젊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현대 사진의 조류를 사진 전문 서적과 전시 관람을 통해 터
득한다. 가끔 서울을 오르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지만 카메라를 들면 그렇지 않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
선은 평소와 다르게 날카롭다. 그리고 만족할 때까지 끈질기게 집중한다. 카메라를 든 그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내가 10년 넘도록 바라본 작가는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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