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전시가이드 2024년 10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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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Malocclusion, 146x86cm, oil on canvas, 2024 Peony2, 91x65cm, oil on canvas, 2024
감각의 단편선
렉터는 “제주 출신인 전은숙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도 같다.”며 “Well-made
전 은 숙 작가 된 시간 안에 숨겨놓고 지켜주고 싶은 작가”라고 말한다. 거꾸로 전은숙은 석
혜원을 “당신은 나의 산타고, 나의 에너지야”라고 고백한다. 전시정체성과 작
가정체성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상업적이지 않은 갤러리스트와 무
명의 제주 민화(民畵)같은 작가, 이들의 만남은 타잔와 제인(Tarzan & Jane)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같은 필연 속에서 소꿉친구들의 놀이 같은 순수를 전시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경험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짧고 강인하게 기억된다. 마 제주 민화와 조냥정신의 합(合)
치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단편선처럼 짧은 이야기는 모여서 삶이
되고 느낌이 된다. 전은숙의 작품은 다양한 플롯을 연결한 단편선과 같다. 전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래서 순수언어가 자연스럽게 장착된 작가의 붓질들은
시를 공유한 사람들의 서사 속에서 우리는 함께 그림을 느끼며 공감하게 된다. ‘말괄량이 삐삐같은 자유로움’ 속에서 제주 조랑말 같은 순수를 보여준다. 이
그 자체로 상징시가 되는 신작들의 제목을 연결해 보자. “꽃밭에는 꽃들이, 오 는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언급한 “불행한
너먼트가 맺힌 나무, 바람에 널어놓은 이불, 주름연습 시리즈, 일렁일렁 모란, 어린 시절이야말로 작가에게 핵심 요소”라는 주장을 뒤집는다. 향기가 흐르
괄호안의 것들…” 작가는 식물을 관찰하면서 그린 연필 드로잉 <열대식물> 는 꿀 같은 그림들은 빛을 머금은 제주의 에너지를 담는다. 오 헨리가 고통과
(미 전시작)에서 구부러지는 나무의 곡선을 술 취한 사람들의 널 부러진 곡선 절망을 에너지로 삼아 ‘풍자적 단편선’을 남겼다면, 작가는 해녀인 할머니와
에 비유한다. 괄호 밖에서 괄호 안을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주제는 사랑과 희 의 추억을 매개로 삼아 ‘감각의 단편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유화(油畫) 임에
생/ 설레임과 두려움의 이중 변주를 낳는다. 오늘의 시대감각을 자신의 에너 도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작가의 감각은 물의 신기루과 용암처럼 흐르는 제주
지 속에서 솔직하게 담아내는 작업들은 작가의 삶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자 의 자연풍광을 고스란히 옮긴 것이다. 전은숙은 고향 제주에 대해 “휴양지 제
동기술법(Automatic Technology Act)과 같다. 작가와 동갑내기인 석혜원 디 주는 나와 상관없는 관광산업이 만든 신기루”라고 말한다. 그래선지 작품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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