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현숙 초대전 WITH YOU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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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작가의 <우주적인 색채의 비 >
- 독일 펼론가 Peter Hank
김현숙 화백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마치 추상적인 색채와 형태의 그림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그림에 천천히 다가
가서 물감이 덧칠된 화면의 층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보이던 작품들이 준인상주의 풍경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림에 더 가까이 가면, 마치 카날레토의 풍경화에서와 같이 풍경 속에서 하나가 된 작은 인간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같이, 김현숙 화백의 그림에 대한 접근은 보는 이에게 현대 추상 미술에서 낭만주의와 사실
주의의 풍경화, 18세기의 도시관의 비유적 적용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적인 길을 단계적으로 열어주고 있다. 말하
자면, 이 이미지들은 추상화와 형상화가 공존하면서 보는 이에게 특별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응축
된 예술사를 나타낸다.
김현숙 화백은 풍경 속의 한 그루의 나무나 넓은 숲의 모습을 특별한 모티브로 묘사하여 그녀만의 인상적인 향기
를 표현한다. 주로 경사진 수평선 앞 풍경 속에 나무가 홀로 서있으며, 대개 이들은 봄에 핀 꽃이나 5월의 에메랄
드 빛 녹색 잎을 달고 있어서, 넓은 벌판과 구분되며 하얗고 밝은 꽃망울은 단색 하늘로 뻗쳐 나간다. 하늘의 색은
벌판의 색과 보완적이다. 초원의 색이 특이하게 붉은색으로 표현되면, 하늘의 배경은 회녹색으로 표현된다. 때때
로 벌판과 하늘의 색 대비는 초록과 파랑의 조합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신선한 봄의 색이 여름의 흐린 색조로 바
뀌긴 전인 5월에 특히 발생한다. 여기서 김현숙 화백의 계절 현상에 대한 색채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
는데, 이를 잘 혼합된 색채로 담아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물감을 칠하는 질감에서 그녀는 땅과 하늘, 전경과 배경
사이에 차이를 둔다. 하늘은 균질한 평탄도를 유지한 반면, 대지는 즉흥적이고 덧댄 붓질이 드러난다. 따라서 전
면에 있는 것들이 항상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하게 보이기 때문에, 전경의 근접성은 자연스럽게 더 구조적으로
보인다. 김현숙 화백은 공간적 관점에 따라 그녀의 그림의 자연주의를 뒷받침한다.
울창한 나무숲을 묘사한 그림에서 촘촘하게 채워진 나무들은 마치 색깔 자체가 흐름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처럼
이미지의 위쪽 가장자리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규칙적이고 엄격하게 수직인 선들로 하늘을 덮고 있는 색의
커튼처럼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 위쪽의 정확한 선들로 부터 밝은 색으로 뿌려진 점들은 떨어지는 커튼의 느낌을
훨씬 더 밀도 있고 물질적으로 표현한다. 커튼은 그림 하단에 각각의 점들로 불규칙적으로 가늘어지며, 반투명하
거나 반짝이는 배경 혹은 수평으로 펼쳐진 지면을 전경으로 드러낸다. 여기에서도 김현숙 화백은 미묘한 상호 보
완적인 대비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아래쪽 보라색 커튼 끝이 노란색 배경으로 희미해지도록 하는 반면, 사진
의 중간 부분에 있는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은 정확히 수직인 디자인으로 주황색 선으로 덮여 있다. 이러한 방법
으로 인상주의적인 스타일은 추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관람객은 그림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미세한 묘사를 알아차렸을 때, 그 놀라움은 더 커진다. 때로는 사랑에 빠
진 커플, 때로는 캐치볼을 하는 두 소녀, 때로는 산책을 하는 두 아이를 둔 부모, 때로는 꽃가지를 모으는 아이를
둔 엄마가 되기도 한다. 수많은 붓질로 표현된 묘사는 자세한 제스쳐에서 일관적인 표현을 발전시켜, 그림에 높
은 서사적 가치를 부여한다. 이러한 점은 김현숙 화백의 탁월한 솜씨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 작은 크기의 묘사
는 그림의 크기 자체가 아무리 크더라도 전반적인 공간적 차원의 엄청난 확장을 제공하며, 이는 기념비적으로 커
지기 때문이다. 확장된 공간 아래에서 컬러 커튼도 확장된 의미를 가진다. 추상적인 모습으로 이는 더 이상 인물
들이 산책하는 나무 숲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인물들에게 내리는 색의 빗줄기로
변한다. 우리가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우주 방사선이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를 낳았듯,
김현숙 화백은 자신의 모습을 색의 비로부터 나오게 한다. 따라서 추상화와 형상화 사이에 있는 그녀의 그림은 우
리가 인간으로서 잘 보살펴지다가 동시에 멈춰지는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
- 2023. 11. 28. 바덴바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