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4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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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time_혼돈과조화(1), 258X194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spacetime_혼돈과 조화(6), 291X198cm, mixed media on canvas, 2024
갤러리 오모크(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3층 갤러리)에서는
9월2일부터 28일까지 《정익현 개인전 : Space Time》를 개최한다.
정익현의 작업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보여준다.
비로 돌아가라」(2023)는 비평에서 정익현의 그림을 이중구조로 분석한다. ‘푸 (白)의 발화(發話)’를 완성한다. 실제 작품은 추상이지만, 작품 안에는 J.G.프레
른 바다와 같은 심연과 황금의 여울(혹은 봄날의 윤슬)’을 현실태와 가능태의 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만남으로 연결한 것이다. 를 떠오르게 하는 신화적 모티브가 자리한다. ‘숲의 왕’이 되기 위해 황금가지
를 두고 싸우는 신화 속에서 황금가지는 상징일 뿐이다. 진짜 의미는 뛰어난
2024년의 신작들은 <spacetime_혼돈과 조화>라는 명칭 속에서 『채근담(菜 능력을 가진 왕(리더)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이다. 시공간의 좌
根談)』 제2장에 나오는 정중동의 언어를 종합적으로 모색한다. “즐거운 가운 표인 ‘Space Time’은 ‘비균제의 균제/무계획의 계획’ 속에서 ‘고결하고 거룩한
데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요,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어 실존’으로 나아간다. 작품들은 자연과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자기 발견’을 향
야 심신(心身)의 현묘한 이치에 다다른다(靜中靜非真靜, 動處靜得來, 才是性 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한다. 작가는 “현실이 심연(深淵:깊은 연못)에 빠진 상
天之眞境. 樂處樂非真樂, 苦中樂得來,才是心體之眞機).”는 깨달음이다. 정 태일지라도,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고
익현의 작품은 외부의 유행이나 글로벌리즘에 현혹되지 않는, 차고 기울어지 말한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모험(Adventures of Gilgamesh)』과
는 순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실존을 향한 시공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 같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와 힘을 작품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져 ‘한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캔버스를 메운 사각의 금
박이나, 정형과 비형성을 아우르는 작은 사각들은 작업의 변주를 연결하면 작가는 추상 안에 이야기의 힘을 부여한다. 시공간을 쌓아 레이어를 만들고,
서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특히, 비백(飛白)을 옮긴 듯한 ‘획’ 혼돈과 조화를 연결해 ‘실존의 네트워크(Network of existences; 살아갈 에
의 발현은 앞선 이중구조 위에 얹어낸 또 다른 실천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 너지)’를 조직하는 것이다. 시공간의 단편인 작은 사각형들은 제각기 다른 모
찌 보면 정익현의 작품들은 평면 위에 다중구조를 쌓아가는 ‘깨달음의 서사’ 양과 크기를 갖는다. 이러한 복합적인 에너지는 ‘다양한 개성을 담은 오늘의
가 아닐까 한다.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혼돈과 조화 속에서도 인간은 상호작용하며, 충
돌하면서도 균형을 이룬다. 정익현의 프레임 안에는 원과 사각이 보이지 않
Space Time, 심연과 희망의 서사시 게 서로를 끌면서도 밀어내는 ‘균형의 미감’이 자리한다. 정익현의 작품들은
그리움의 전복과 현실의 깨달음 속에서 탄생한 ‘심연과 희망의 서사시’라고
글씨와 그림이 한 몸이라는 ‘서화동체(書畫同源)’의 시각은 정익현의 그림에 할 수 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시공의 추상은 그리움을 알고, 자신을 깨
서 현실이 된다. ‘바람-비(風雨)’로 쓴 것 같은 자유로운 선획(線劃)은 정해진 닫는 가운데 만나게 되는 ‘인간 존재를 향한 뜨거운 사랑(Sustainable love)’
법칙을 벗어난 필세(筆勢)의 움직임(飛動)으로 인해 ‘비백(飛白)’의 에너지를 이 아닐까 한다.
드러낸다. 실제 서체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비백체(飛白體)’는 자로 그은 듯
반듯한 선이 아니라, 중심은 검고 주변은 희끗희끗한 날아갈 듯 붓을 놀리는 문의전화 : 054-971-8855
행위이다. 작가는 다층구조로 만든 바탕을 마치 여백처럼 해석함으로써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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