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이복춘 개인전 2022. 8. 24 – 8. 30 갤러리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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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申欽)은 “그림은 형체로 인해 비롯하는 것이지만, 형체는 그럼 어디에서 생겨날까. [畫是因形起, 形還緣底生.]”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화가가 그
림을 잘 그려도, 어차피 ‘자연의 소리[天籟]’까지 들려줄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말을 보면, 그림의 표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므로 형체의 근원에 집중
하여 치열하게 표현할 것을 요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표현하는 화가는 그 형상을 보고 느끼며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감각(感覺)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심신(心
身)의 소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느껴서 아는 정신작용[感覺]’을 통해, 화가는 예술형식이 가진 한계를 넘어 무궁한 표현을 이룰 수 있는데, 작가
의 표현에 스며있는 기질과 재능은 고유한 미적 경험을 포함하게 된다.
화가 소현 이복춘은 화폭에 감각을 구현하면서 세밀한 표현의 과부하를 줄이고, 그 감각의 여분을 활력 넘치는 용필(用筆)에 사용하였다. 그 결과, 작품은
표현의 결여보다 감각이 정제된 힘을 느끼게 한다. 이 힘은 미적 체험을 표출하되, 숙련된 기술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표현의 두려움을 없애는 원천이
되었다. 표현에 두려움이 없다고 해서 신중함의 결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호흡이 스민 운필은 표현이 잘못될 것을 우려하지 않았고, 특출난 기교나
다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의 운필(運筆)은 뭔가 어색하고 미흡한 듯 보이지만, 보는 사람에게 운필의 감각 속에 머물게 한다. 이것은 숙달된
표현과 기교만을 특출난 표현행위로 보지 않는 작가의 미적 수렴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는 자신만의 표현세계를 구현한 의향(意向)의 산물이며, 표현 욕
구로 요동치는 내적 혼란을 잠재운 예술 의지에 기인한다.
작가들은 자신만의 용필과 표현기법을 숙련하지만, 체화된 숙달은 자칫 표현의 확장을 억제하는 창작습관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작가는 표현행위가 숙
달되기를 꺼리는 동시에, 스스로 수용한 감각과 그 지향성을 부정하거나 설정한 표현과제를 의심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이런 의식은 더 잘 표현하려는
욕구를 절제하고, 감각의 미적 유연성이 마비되지 않게 함으로써, 오히려 작가만의 표현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마음에 기욕(嗜欲)이 가득 차면, “사물
이 지나가도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가 이르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物過而目不見 聲至而耳不聞也]”는 말처럼 작가는 용필(用筆)의 유형과 필세(筆勢)
를 조율하면서도, 기교를 부릴 욕심을 내지 않았다.
즉 작품에 스며든 작가의 감각은 유형(有形)에 대한 반응을 거쳐 무형(無形)에 대한 초감각(超感覺)적 심리를 토대로 확장된 것이며, 억지로 그 표현역량
을 끌어올리지 않고 본래의 미적 취향과 기질로 취사(取捨)함으로써 감각 자체의 매력이 표현과 전화(轉化)에 기여하고 있다.
박 만 규(화가ㆍ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