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전시가이드 2025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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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정의 전시포커스
                                                          반려식물-스파티필름, 55x40x28cm, 아크릴에 실크스크린, 2025
         초록그림자                                          를 만들어낸다. ‘초록그림자’라는 제목은 생명과 시간, 감정과 기억이 겹쳐진
                                                        조형적 언어이다. 초록은 본디 생명의 색이지만, 김서울의 작업 안에서는 단
                                                        지 희망과 생장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초록은 그 속에 그림자를 품고 있고, 빛
        김서울 작가                                          과 어둠이 공존하는 양면적 감정을 내포한다. 작가는 말한다. “초록은 생명 그
                                                        자체이지만, 그 안에는 잊히지 않는 그림자도 함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이중
                                                        성은 모든 작품 안에서 물성과 감각으로 구현된다.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작품은 모두 일정한 규격 안에 있지 않다. 아크릴의 두께, 필름의 투명도, 인쇄
                                                        된 식물 이미지의 밀도는 각각 다르며, 빛의 방향과 위치에 따라 레이어가 달
                                                        리 반응한다. 그것은 감정이 늘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형
        도시적 감각과 회화적 감수성이 교차하는 작가 김서울의 조형 언어는, 그 출       적으로 환기한다. 관람자는 그 앞에 서는 순간마다 새로운 감정의 조각을 마
        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사유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초        주하게 되고, 초록의 정원 안에서 자기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또한 전시는 시
        록그림자》는 이 여정의 한 정점에 위치한 전시이자, 동시에 감정의 층위를 조      각 예술에 ‘시간’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주목된다. 판화라는 전통적 평면 매체
        형적으로 시각화해온 지난 십여 년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를 사용하되, 그것을 투명한 소재 위에 인쇄함으로써 생기는 입체적 공간감은
                                                        마치 시공간을 압축하거나 확장하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레이어는 단지 겹
        감정의 정원, 빛의 층 ― 《초록그림자》와 김서울의 조형 세계              쳐진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며 기억의 두께이다.
        이번 전시 《초록그림자》는 김서울 작가가 오랜 시간 다져온 조형 언어의 정제      이 전시는 정원의 시학과 레이어의 철학을 동시에 구현한다. 김서울에게 정원
        된 형태이자, 그 감각의 심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시는 그녀의 대표 연작인      은 단지 식물이 자라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자라고, 기억이 뿌리내
        <반려식물>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투명한 아크릴과 필름, 실크스크린 기법을       리고, 시간이 스며드는 내면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정원은 언제나 혼자만의
        통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레이어를 구현한다. 이 조형 방식은 시선과 위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 의해 다시 완성되는 ‘공감의 장소’이다. 이처럼 《초록그
        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되며, 단일 이미지가 아닌 감정의 흐름으로서의 회화       림자》는 시각 예술이 감각의 구조를 어떻게 새롭게 제안할 수 있는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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