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김민배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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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松 張國鉉선생
올해 80객에 든 소나무 사진작가이다. 松>이 내걸려, 나의 수호신 역할을 해주었다. 내가 겪어야 했던 고비고
오랫동안 전국 심산유곡의 名品 <大王松>을 찾아다니느라 죽을 고비를 비마다 古松선생의 <大王松><발왕산 폭풍우 속 천년 朱木> 사진이 나
몇 번씩 넘겨야 했다. 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古松선생은 내가 건강문제에 부딪히자, 울진에 한옥거처를 구해 기거
古松선생은 世俗을 벗어 난 靈感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 도통한 풍미를 를 주선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또한 내가 조선일보와 TV조
강하게 풍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물론, 앞으로 우리 앞에 닥 선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에 부딪힐라치면 새벽에 전화를 걸어 좋은
칠 미래모습을 현실감 있게 제시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정치 지도 길을 인도해 주었을 뿐 아니라 自筆손편지를 보내 격려해 주었다.
자는 물론, 대통령선거 등 각종 선거예측은 백발백중이어서 모두를 놀
라게 한다. 名山을 주유하면서 수백 년 폭풍한설을 이겨낸 명품 소나무
의 氣를 잔뜩 받은 탓이라 여겨진다.
나이차를 떠나 古松선생과 나의 인연은 여름휴가를 수년동안 같이 보낼
정도로 오랜 기간 이어졌다. 古松선생이 主활동무대였던 경상도권을 벗
어나 나의 일터였던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첫 서울 소나무 사진전을
연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고송 장국현 대왕소나무
나는 나름대로 물심양면으로 힘이 되어주고자 노력했고, 추후 계속된
서울 예술의전당 소나무 사진전과 프랑스 파리 사진전의 성공을 위해 古松선생의 작품은 20년에 이르는 소나무 사진에 미친 老아티스트와
노심초사 힘을 모았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 후 古松선생과는 내가 관훈 한 언론인의 인연의 産物이다. 나에게는 중요한 국면마다 <부적> <수호
클럽 총무를 할 때 서울의 중견 언론인들을 그가 거처했던 울진 금강송 신> 역할을 해주었으니 더 각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소나무를 매개로
군락지 답사로 이어지게 했다. 하늘과 接神하는 신통력 탓인지 건설시행업을 하는 선생의 아들은 무수
한 고비를 아버님의 조언으로 이겨내 수천억 재산가가 되었다. 古松선
이런 인연 때문인지 내가 조선일보를 떠나 TV조선에서 새로운 임무를 생께 眞心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이 지면을 빌려 전한다.
부여받을 때마다 古松선생은 그가 찍은 名品소나무 사진과 千年주목 사
진 등을 보내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TV조선 보도본부장시절 나는 어
려운 상황을 타개하느라 보도본부장실에 라꾸라꾸 1인용 간이 침상을
놓고 2년 4개월간 24시간 비상숙식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때도 보도본부장실에는 古松선생이 보내준 폭풍한설을 이겨낸 <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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