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임근우 초대전 2025. 9. 10 – 9. 26 장은선갤러리
P. 2
본질의 무게 – 임근우 그림의 근원을 생각하다
애초에 꽃은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벌이나 나비에게 자신
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의탁했을 뿐이다. 벌과 나비가 그냥 지나가지 않도록,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
록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가. 꽃을 그리는 것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라 한 것이고,
말을 그리는 것은 더 강하라 하는 것이고, 기린을 그리는 것은 더 높아지자는 것이다. 그대로 바위를
그리는 것은 우리 더 단단해지자는 것이고 모자를 그리는 것은 그 모자를 썼던 이들을 그리워하고 기
억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근우의 <Cosmos-고고학적 기상도>가 그려진 것이다. 과거를 통틀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본질에 관한 것이다. 예술 행위는 에둘러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기실은
제대로 본질을 찾아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행위이다. 얼마나 허위가 많고 껍데기가 많은
시절인가. 정보가 많을수록 유사한 사이비들이 더 많아진다. 심지어 전쟁은 사랑을 노래하면서 그 무
자비함을 더하고, 폭력은 정의를 내세우며 힘을 얻는다. 왜 우리는 꽃과 같이 탐스럽고, 기린과 같이
우아한 삶을 살지 못하는가. 우리는 바다에서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기갈이 들린다. 끝이 없는 경쟁
의 깃발 아래 흙과 땅, 하늘과 바람의 신성은 사라진다. 찬란한 문명은 신기루처럼 잡히지 않고 우리
는 소외된 채 바라보는 신포도가 될 뿐이다.
그리하여 임근우의 붓은 의미를 더한다.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처럼 붓을 휘둘러 세상에 질문을 던진
다. “지금 너는 바른길을 찾았는가, 그 길을 가고 있는가?” 생명의 시원을 잊어버린 문명은 집으로 돌
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법고 창신이다. 어릴 적 놀던 춘천 중도(中
島) 돌무덤에서 쥐어 본 마제석기 같은 것이다. 따뜻하지만 차갑다.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이 멈춘 듯한 묘한 단절감도 느껴진다. 그 낯설음 속에 떠 있는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거꾸로 놓아보
기도 한다. 그러면 모자는 세상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하여 그의 캔버스 화폭은 그대로 오방색의
생동감을 주는 우주가 되는 것이다.
보이는 재료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일은 그만큼 옛것을 살려 미래를 예견해 보는 일과 닮았
다. 상상력을 더하여 생각의 근육을 단단하게 넓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질’이 주는 힘이 아닐까.
본질은 잠시 구름에 가려질 수는 있으나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본질은 모든 사물, 모든 현상이
이미 갖고있는 내용이다. 애써 무어라 주장하지 않아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창문에서 비치는 햇살이나 실내의 조명에도 각각 다른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질서와 조화’라는 우주
의 문법을 파괴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햇살처럼 한 걸음 물러서 우리를 바
라볼 뿐이다. 따뜻하게.
- 최 삼 경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