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전시가이드 2023년 2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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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Piece of memory 22-11, BK9 Glass,Slumped, 30x30x9cm, 2022
2023. 2. 28 – 3. 15 갤러리내일(T.02-391-5458, 새문안로 3길 3)
고성희 유리조형전 은 더욱 강하게 관객을 압도한다. 게다가 고성희 유리 조각은 투명함과 불투
명함의 극과 극의 이중적인 모든 단계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의 특성을 지녔
다. 왜냐하면 고성희 작가의 작품 제작 기법은 주로 슬럼핑Slumping 기법(불
글 : 이봉순 (미술이론, 조형예술학 박사)
에 타지 않는 소재 또는 열을 유지하는 형틀 위에 유리를 얹고 중력에 의해 주
저앉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주조(鑄造, moulage)하여 원형을
만드는 고성희의 작품제작과정은 용적이 중요한 조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
나 그 원형 위에 유리를 얹고 높은 온도의 가마에 넣어 완성된 그의 조각은 용
가슴, 등, 둔부, 토르소(torso)..... 고성희의 조각의 인체의 파편들은 그리스나 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댕 조각과 전혀 다른 ‘형상의 실루엣’을 나타낸다.
로마 조각의 파편들은 연상시킨다. 그러나 영롱한 빛과 아름다운 색채를 지 고성희 조각은 유리의 물성과 슬럼핑 기법 덕분에, 위에서 로댕조각을 해석
닌 유리의 재질감 덕분에 또 다른 감각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한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Krauss가 말하는 ‘내적이고 공적이라고 인
삼차원형상을 지닌 조각은 눈에 볼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이 위 식하는 것 사이의 경계선인 신체의 표면’, 엄격히 말하면 ‘신체의 실루엣’만을
치한 공간과 더불어 전신감각, 즉 촉각에 관여한다. 촉각은 신체에 내재되어 획득하게 된다. 그의 조각 형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는 인체와 언어(활자)이
있는 내적 공간 감정이며 시각은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조각의 물성과 다. 그의 인체는 해부학적인 개별 신체처럼 매우 국소적인 탓에 행동의 양태
중량감을 느낄 수 있는 빛과 관련된 현상학적 지각 영역이다. 실재로 빛에 의 들을 짐작할 수 없으며 각각의 인체들과 함께 활자들이 혼합되어 있을 뿐 읽
한 미묘한 변화 혹은 직접적인 변화는 로마조각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광채 혀지는 텍스트는 없다. 그래서 통일된 주제로 묶는 것 또한 불가능하므로 작
와 그림자를 발산한다. 빛이 조각을 둘러싸고 있음으로써 조각의 굴곡을 결 품의 의미는 지연된다. 왜냐하면 고성희 작품에서 파편적인 인체와 언어는 상
정하기 때문이다. 시각에 의존하는 회화와 달리 빛은 조각에서 우리가 쓰다듬 이한 기억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앙리 베르그손 Henri Bergson이
거나 만지도록 권유하는 것으로서 울퉁불퉁하거나 두껍거나 얇다는 등을 촉 말한 부분기억들의 집합으로 이해된다. 그는 기억을 전체 기억과 부분 기억
지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객과 조각상의 촉지적인 연결은 충 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누는데, 전체 기억은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어떤 진보가
만과 비어있음의 유희에 대한 가장 중요한 관점을 최대한 제공한다. 조각상 이루어지게 되고, 마침내 전체로 조직화된다. 습관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동
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들과 연관되어 모든 볼륨이 지닌 충만과 공백의 상 일한 노력의 반복에 의해서 획득된다. 그와 반대로 어떤 부분기억은, 습관의
호교체에 대한 감정으로 인식되어진다. 특성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의 하나의 사건과 같고, 본질상 하나의 날짜
고성희의 유리 조각에서 이러한 촉각과 시각에서 유발되는 충만과 비어있음 를 지니기 때문에 반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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