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임현주 개인전 2024. 4. 17 – 4. 29 가온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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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개인전에 부쳐



                             글: 전보미(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미네소타 대학 미술사 부전공)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은 절대 혼자 있는 법이 없다. 언덕 중턱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화폭을 가득 메우고, 기찻길을 닮은 나뭇가지와 가로등은 달과 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삼
             삼오오 떼를 지어 서 있는 주전자와 콩나물시루, 항아리와 찻잔 무리도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제법 분주하다. 눈발이 휘날리고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배경에서도 쓸쓸함보다는 다정함
             이 느껴지는 것은 어느 장면에서나 거침없이 따스한 봄기운을 불어넣는 작가의 인상주의적 색
             채감각에 더해, 사물과 사물 사이의 만남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 특유의 공간적 언어
             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의 매병과 주병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비좁은 골목에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집들의 곡선은 어딘지 모르게 조화와 균형이라는 우주의 기운을 품고 있
             는 듯하다. 각기 다른 지붕을 인 흰 벽의 몸뚱아리들은 기우뚱 기울어져 있지만 서로의 버팀목
             이 되어 그 위태로움을 상쇄하고 있으며, 모두에게 열려있고, 친절하다. 이제는 임현주 작가의
             작품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골목과 사다리, 기찻길 모티프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
             결하는 통로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편 작품에서 사물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틈, 잠시 정지하고 쉴 수 있는 아늑한 방과 같은 공
             간들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함께 있음”을 더욱더 빛나게 한다. 요컨대 반짝이는 집의 윤곽선은
             바깥세상의 빛을 반사하면서도 개개인이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머물러 자유롭게 꿈꾸고 스스로
             를 재정비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보호막과도 같다. 개인 고유의 사적 영역이 선사하는 창조적
             이면서도 치유적인 힘은 무엇보다도 최근에 임현주 작가의 작품에 새롭게 등장한 실내 공간에
             서 잘 드러난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집 안을 살짝 엿보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방안에는 소중
             한 삶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낡은 가구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잡동사니조차도 자신만만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폼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실내라는 사
             적영역은 남성적 공적영역에 밀려 등한시되어 왔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
             은 “자기만의 방”이 무한한 상상과 창조가 가능한 예술가의 공간이자 인간의 보편적이고 자족
             적인 안식처로서 기능함을 이야기 해왔다. 두꺼운 담요를 깐 아랫목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따뜻
             한 차를 마시며 시린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요새와 같은 방. 이곳에서 시간은 고요하고 멈춰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아주 천천히 꿈틀대면서 뭔가가 자라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꺼운 윤곽선이 그려내는 외벽 안쪽에 저장된 기억과 추억, 경험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생
             성하며, 가끔 무자비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바깥의 시간을 피해 개인이 단단하게 여물어 바
             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 준다. 이렇듯 외풍은 있지만 온기가 피어오르는 방안에서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를 찾아가다보면 아기거위도 어느새 이 긴긴밤을 보내고, 겨울을 나고, 어
             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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