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산 최은철의 철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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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작가노트>





           인류의 행복을 가로막는 편견                       한 중세 르네상스 이후 현대예술은 전통적, 이            예술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것이 또한 서예이
           우리는 태어나면서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많             성적인 기반을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인             기 때문이다.
           은 교육과 영향을 받게 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으로서 개인의 취향 및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은 사람을
           개인적 취향보다는 집단에서 요구하는 삶을 살              하는 사조가 유행되었다.                        위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나의 생각
           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롭고 신선하며, 개인의 감성표현을 중시한 모            에서 제언을 한다면, 예술에서 형상과 정신을
           이로써 천성에 의한 삶이 아닌, 사회적, 인위적            더니즘과 이를 부정하여 출현한 현대의 포스트             동등하게 중시해야 함을 역설하고자 한다. 그럴
           인 규약으로 조성된 틀 속에서 길들여지고 형              모더니즘은 어떤 물건이든 개념을 부여하면 예             듯한 형상만으로는 공허함에 빠지기 쉽고, 자기
           성된 사회적, 개인적 관념을 소중한 지식으로              술품이 되고, 예술가다 될 수 있음을 공안하는            생각에 기발함만으로는 사회적 공명을 기대하
           여기고 살아간다.                             추세로 변화 발전하였다.                        기 어렵기 때문이다.
           틀에서 나온 관념은 필경 편견을 낳게 되고, 편            모든 일상용품, 심지어 변기까지도 예술품으로
           견에서 나온 가치관이나 자존심 같은 것들은               둔갑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현대과학의 걸            서예는 形神兼修의 예술로 잘 융합하면 현대예
           모든 대상의 진실한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없게             작물인 AI는 모든 산업분야를 석권하고, 이제            술에 수액이 될 것
           하는 요인으로 작동된다. 개인의 과도한 욕심과             예수시장까지 넘보고 있는 가운데 AI에 의한             서예는 "정신적 빛깔이 으뜸이요, 자형이나 선
           사회의 불안이 바로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작품의 저작권 문제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질 등은 그 다음이다(神彩爲上 形質次之)"라는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권력을 위한 지배층              이에 따라 '더 이상 예술가 또는 예술로 분리될           말과 같이 필묵의 자취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
           의 자의적 편견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억압              것이 없다'는 식의 '예술종말론'도 한편에서는            의 내면, 즉, 意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하게 되고, 허명에 급급한 예술가의 편견은 사             긍정되고 있으며, 한국인으로서, 동양예술을 탐            精神은 의지나 마음을 의미하지만 힘, 에너지를
           람들의 미감을 어지럽히고, 예술의 정체성과 예             구하는 지성인으로서도 현대예술의 정체성에               의미하는 ‘精氣’와 그로부터 나오는 ‘神氣’로 나
           술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흐리게 할 수도 있다.            대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누어 볼 수 있다. 즉, 신체적 건강 여부를 ‘精’이
                                                                                      라고 한다면, 마음의 건강상태를 느낄 수 있는
           편견으로 인한 현대사회의 문제                      동양의 예술정신은?                           것이 ‘神’으로, 서예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행               동양학에서 자연을 법으로 삼는 예술정신은 인             온전한 아름다움을 발현한다는 의미다.
           복 찾기는 사리사욕을 위한 물질과 명예에 시              간의 감정표출에 대해 대체로 긍정하되 절제를             따라서 서예가의 일상은 미적 체험 외에도 건
           선이 머물러 있고, 타인과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통한 세계와의 조화로움을 지향한다.                  강한 신체와 입체적 사유를 유지하기 위한 노
           돌아볼 겨를이 없어진지가 꽤 오래 된듯하다.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욕망과 감정을 있             력이 수반되는데, 이른바 실천과 사유를 끊임없
           근대이후 100여 년간 지속된 개인주의, 물질주            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솔직한             이 겸수해야하는 것이다.
           의는 놀라울 만큼 과학과 경제발전을 이룬 반              성향임과 동시에 다양한 미감을 즐길 수 있어             입체적 사유란 자기중심의 편견을 버림으로써
           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사회 전반에서 매우               좋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억지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마음으로, 그 始原을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들여다보면 모두 인성과             스럽거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세계의 질서는            도가는 ‘無’, 유가는 ‘仁’, 불가는 ‘空’을 들어 설
           관련된 사건 사고로 인간적 상상의 범위를 넘              각기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하나의 존재를 위             명하기도 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평화롭
           어선지 오래다.                              해 기타 생명을 버릴 수 없듯이 개인적 취향만            고 행복한 삶을 위한 마음과 실천을 요구하는
           이대로 간다면 인류는 인류가 쌓아온 물질과               으로 예술표현이라고 내질러놓은 것은 예술이              것으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德性인바, 노자는
           관념으로 인해 각자 고독한 세계에서 망하고               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있기 때문이다.               “玄德”이라고도 하였다.
           말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주마음을 닮은 ‘현덕’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
           내가 보기에 현대예술과 사회의 심각성 및 문              나의 예술관                               한다.
           제 원인은 맞물려 있다. 한마디로 정신문화를              나는 전통예술인 서예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으             혈기만 왕성했던 젊은 시절 나는 못마땅한 상
           소홀히 함으로써 빚어진 것이다.                     로서 당연히 고지식한 부류로 보일 수도 있겠             황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를 저지른 적이 가끔
                                                 다. 그도 그럴 것이, 서예란 문자를 익히고 고문          있었는데, 노자를 탐구하면서 나의 정곡을 찌른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예술                     을 뒤적이며, 고법첩을 베껴 쓰는 공부만 해도            명제 중 하나가 바로 ‘현덕’이었고, 무지했던 내
           신 중심으로부터 인간중심적 사유로 크게 전환              오랜 세월이 필요하고, 문자와 지필묵을 떠난             가 옛날과 조금은 다른 존재로 살아남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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