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농그룹전 2024. 12. 11 – 12. 17 갤러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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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否定)’을 통한 끊임없는 ‘새로움’으로의 고양(高揚)

                  -그룹 ‘농 non’의 2024 전시에 부쳐




                                                                            김 광 명(숭실대 명예교수, 미학/예술철학)





                  그룹 ‘농 non’은 1980년 15인을 중심으로 창립전(청년작가 회관, 서울)을 가졌으며 그동안 외환위기, 코로나 사태 등의 불
                  가피한 국내 여건으로 인한 공백 기간(1988-1996, 2020-2021) 을 제외하고 2024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전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100여 작가들이 참여해 왔으나 매회의 전시에 20여 내외의 작가들이 꾸준히 참여하며 지금까
                  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작가 김환기 등이 중심이 되어 자유로운 창작 열기를 바탕으로 결성된 ‘자유 미
                  술가 협회’ 이후 90여 년 가까이 국내에 크고 작은 그룹들이 다양한 이념과 목표를 표방하고, 또는 개인 간에 서로 연대하여
                  작품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예술적 열정을 실현해 오고 있다. 여러 그룹 가운데는 여러 이유로 중단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여전히 활동하는 중에 있다.

                  창립 때부터 그룹 ‘농’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얼마 전부터 회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작가 김영철은 다음과 같이 소회(所懷)
                  를 밝히고 있다. 즉, 그룹 ‘농’은 어떤 한정된 이념을 표방하기보다는 예술가 개개인의 개별적인 예술성과 진정성을 높이 평
                  가하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치우치지 않고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존중하는 입장을 취한
                  다. 다양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이와 같은 자세는 오늘날의 예술 상황에도 알맞은, 매우 시의적절한 접근이라 하겠으며 이는
                  그룹 ‘농’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와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이번 전시에 즈음하여 필자는 ‘농 non’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연관하여 매우 유의미할
                  것으로 생각한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농 non’은 프랑스어로 ‘아니오’라는 ‘부정, 거부, 반대’의 뜻이며, 비(非)·불(不)·무
                  (無)의 뜻을 담고 있다. 부(不)와 부(否)의 차이를 보면, 부정(不定)은 ‘정해지지 않음 혹은 일정하지 않음’이고, 부정(否定)은
                  ‘아니라고 함’이다. 요즘 예술이 처한 상황은 예술과 비(非)예술, 반(反)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터에, 이런 의미가 시사하는 울
                  림이 크다. 왜냐하면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아울러 미래지향적 계기가 되는 까닭이다. ‘아니라고 함’은 기존의 것
                  을 넘어 새로움을 찾기 위한 모색이요, 천착의 출발점인 것이다.


                  사물이란 원래 그 자체 안에 부정적 요인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부분이 더 큰 것을 향해 승화된다는 깨
                  달음의 과정이 바로 서구 사상의 변증법이다. 전후 독일 사상계를 주도했던 비판 사회 이론가이자 미학자인 테오도르 아도
                  르노(Theodor W. Adorno,1903∼1969)는 그의 『부정의 변증법 Negative Dialektik』(1966)에서 선행하는 부분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를 거부하고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것을 거듭 생성해 가는 과정의 독특한 변증법을 주장한다. 단지 긍정을 얻
                  기 위한 과정으로서 부정이 아니라 그치지 않는 새로움으로 고양되는 과정에 우리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正)과 반
                  (反)의 대립과 갈등이 지양되고 결국에는 화해하고 합(合)의 명제에 이르게 되면서도, 다시금 새로운 도전인 반(反)에 직면
                  하여 모순을 해결해 나아가는 지속적인 과정의 반복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그간 주로 다루어 온 주제를 대충 들여다보면, ‘무제’(김동준), ‘나 여기 서있네’(김연순),
                  ‘Khora-240408’(김영운), ‘작업 2024-2(Work 2024-2)’(김영철), ‘찔레꽃’(서인희), ‘work 2404’(송영숙), ‘비움과 채움’
                  (송옥진), ‘무위심상’(전제창), ‘B.C8,000년’(조충식), ‘숨 / inner breath #2413’(최수), ‘팽창-숲’(함연식) 등으로 다양하다.
                  비슷한 주제라 하더라도 점·선·면의 형태와 색면 그리고 공간 구성을 달리하고 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은근한 재미와 즐
                  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보이는 것 가운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속내를 드러내며,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사이
                  의 대화와 소통을 모색하는 시도는 그룹 ‘농’ 구성원들의 열정적인 예술 의지와 더불어 생생한 미적 상상력을 돋보이게 한
                  다. 이는 그룹 ‘농’이 펼칠 앞으로의 활동을 우리에게 더욱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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