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이주영 초대전 8. 2 – 8. 18 장은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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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그것 너머의 투명

           충남대학교 교수  박 찬 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하나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화가는 자기가 보는 것을 그린다기보다는 자기가 그리는
           것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가도 자기가 속한 사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시공간적 환경의 영향을 받
           아 작품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화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모든 예술품이 그러하듯, 관람자 혹은 수용자의 눈
           과 귀, 감각을 통하여 새롭게 해석됩니다.

           최고의 미술사가 중 한 사람인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 Gombrich)는 『예술의 역사』에서 “미술이라는
           언어의 진정한 묘미는 화가가 현실의 환영을 재생산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통하여 이
           미지가 투명해진다는 사실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화가 이주영의 전시회를 통하여 투명한 이미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주영 화가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등대는 어떤 면에서 인간의 외로운 막막함과 고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로에 대한 궁극적
           인 연결성을 끊임없이 암시합니다. 그래서 어느 극작가는 인간이 건설 한 건물 중 등대만큼 이타적인 건물
           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주영의 그림이나 조형품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모든 대상이 작은 십자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믿음, 소망, 사랑을 담는 방법일 수도 있겠고 간절한 기도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만나고 소통하고 어우러
           지는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떠나 여행하고 방황하고 고생을 겪으면서 성장합니다. 사실은 인생이 그런 것이겠지
           요. 그 여정에서 어린 왕자의 여우와 같은 진정한 친구를 만나 평생의 스승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
           리는 우리가 길들인 것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인다는 것도 투명하고 명정하게 깨닫습니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피터 팬과 요정 팅커 벨. 아시는 바처럼 피터 팬은 하늘을 날며,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
           장난꾸러기 소년입니다. 같은 화면에 끊임없이 “똑딱똑딱” 소리를 내는 시계는 비단 후크 선장만의 트라우
           마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운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성장하길 원치 않으며 시간이 멈춘 피터 팬
           이야기는 현실의 슬픔을 길어 옵니다.

           『아름다움의 역사』에서 “예술의 목적은 서로 다른 눈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 그리고 아주 오래된 혹은 이
           국적인 본보기로 되돌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인용
           하면서, 화가 이주영의 예술세계가 더 깊어지고 그 자신 존재의 지평도 더욱 넓어지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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