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강해주 개인전 2024. 6. 26 – 7. 1 갤러리라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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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 군락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출신지, 성별, 학력, 교우관계, 직장, 종교 등의 사회적 생태계 안에서 자신의 사회적 정
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도 한다. 내가 속한 삶의 생태계
에서 나의 정체성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인해 불편하고 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람 잡는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토끼풀은 약하지만 강한 군락을 지어 생존한다. 토끼풀이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을 위해 군락을 이루고 사는 것
처럼, 사회적 동물로서 나는 사회적 생태계라는 군락에 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의 정체성 확립을 강요받고 있
다. 나는 토끼풀 군락과 인간 사회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해 봤다.
떼어 내다 - 우리는 결과 중심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과정은 부산물 취급을 받을 뿐이다. 생물들이 살아 있을
때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던 것들이 상품화될 때는 부산물 취급을 받는다. 나는 나를 사회화 할 때 나에게서 상
품화 할 수 있는 것만 떼어내어 정체성화 해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토끼풀 꽃을 탈색된 흰색처럼 표현했고
그 중에서 줄기와 잎은 빼고 토끼풀 꽃만 따로 떼어내어 상품화했다.
떼를 짓다 - 떼어낸 꽃그림은 다시 여러 개의 작은 그림들로 군락 짓게 했다. 나의 상품화된 토끼풀 꽃 모음 그림
들은 내 자신의 표면적 정체성, 이념, 사상, 종교, 권력, 경제적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
체성의 범주에서 안주하는 것만큼이나 동시에 우리의 자유를 상실한다. 떼어내고 남은 그림은 마치 추수가 끝난
황량한 대지 같고, 나는 그 그림을 더 사랑한다.
떼를 쓰다 - 지금 우리 시대는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밝고 가벼운 색채로 재미있고 예쁘게 그려야만 한
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감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시각을 위해서는 순간적인
느낌에 충실해야 하며 즉흥적, 비연속적, 비분석적, 비논리적, 비 양식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마치 우
리의 미각이 가공 식품에 길들여진 것처럼 이런 논리에 의해 탈색된 이미지와 이를 바라보는 길들여진 가공 시
각만이 존재한다. 모든 가치가 바코드화 되고 흉기화 된 문명 속에서 살고 있으며 질이 없는 양을 추구하는 시대
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시대이념이라 떼를 쓰고 있다.
팝아트 화가들이 표현한 비개성화 된 인간 이미지가 결국은 새로운 인간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인 것처럼, 나
는 토끼풀 군락 그림을 통해서 상품화될 수 있는 것들만이 가치가 인정받는 결과 중심주의사회가 아닌 그 노력
과 과정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생태계이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24. 6. 작업노트의 메모들을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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