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원정상 개인전 2025. 12. 3 – 12. 10 KT&G상상마당 춘천갤러리
P. 62
작가노트
지층의 기억(Strata of Memory)
돌의 침묵을 만나다
나의 작업은 자연과 환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과 본질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중에서도 돌(石)은 인류의 시간을
넘어선 존재로서, 지구의 기억과 생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매개체이다. 돌의 표면에는 수십만 년의 세월이 퇴적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지구가 생성되던 원초의 숨결이 남아 있다. 나는 그 시간의 깊이와 물질의 무게를 응시하며, 사진
이라는 언어로 존재의 층위를 탐색하고자 했다.
풍화와 침식, 바람과 비, 계절의 변화를 견디며 본질을 잃지 않는 돌의 속성은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다. 나는 그 침묵의
형태 속에서 ‘존재의 의연함’을 발견한다. 돌의 표면을 따라 빛이 흐르고, 그림자가 머물며, 시간의 결이 새겨진다. 그
표면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지구의 시간과 인간의 사유가 교차하는 장(場)이다.
돌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정적(靜寂)과 긴장, 그리고 내면의 파동은 촬영의 본질적 에너지가 된다. 현장에서의 기다림과
응시는 단순한 기록 행위가 아니라 사유의 과정이며, 나 자신을 비추는 수행의 시간이다.
나는 그 무언의 시간을 시각화하며, 돌 속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피’를 느꼈다. 돌은 스스로의 형태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월에 의해 닳고, 깎이고, 부드러워진다. 그 과정은 자연이 보여주는 인내와 순환의 미학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이
기도 하다.
**〈지층의 기억〉**은 다양한 형태의 돌을 통해 ‘시간의 퇴적’과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 시각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나는
카메라를 통해 돌의 물성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잠든 정동(情動)을 읽어내고자 했으며 침묵의 힘 속에서 사진가로서의
사명과 존재의 가치를 다시금 되묻게 된다.
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