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박지혜 개인전 4. 26 – 5. 1 교동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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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共生)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는 인간은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 안에 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또는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 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 안에서 살고, 죽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공간성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른다.
작품 공간 속에서 우리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된다. 푸코는 한 공간 속에 동시에 펼쳐지는 다양한
공간들을 헤테로토피아로 정의한다. 이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들이 공존하는 세상, 큰 흐름 속에서 맥락화 되고 연속선
상에 서있는 질서정연한 시공간이 아닌 어느 한 지점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시공간의 층위에 틈이 발생했을 때의 공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 전이적이며 부유하는 공간을 지칭한다.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론으로만 가능한 꿈의 세계인 유토피아(Utopia)도
아니며, 동질화되고 획일화된 호모토피아(Homotopia)와도 대립되는 공간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삶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휴식의
공간이자 현실과는 또 다른 위안과 안식처를 제공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상상의 공간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공간을 구축하고,
각자의 시선과 방식으로 헤테로토피아가 되는 공간처럼 더 나아진 세상과 장소와 공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하나 연결 지은 단서를 찾아 결국 헤테로토피아 또는 이면의 공간에 도달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헤테로토피아 공간
을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자연’으로 초점을 맞춰 바라보고자 한다.
생명의 ‘순환’과 ‘갱신’이라는 자연의 섭리는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우리는 항상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
큼 오랜 시간 자연과 공존해왔다. 그러나 유례없는 전염병의 시간은 일상을 특별하거나 어려운 일로 만들었고,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
던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며 자연 공간을 갈망하는 데 이르렀다. 코로나라는 질병뿐만 아니라 전쟁, 기후 위기, 자연 재해 등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혹은 인간의 욕심이 불러일으키는 능동적인 행동으로의 파괴되는 자연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위기를 만들
어낸 가해자는 바로 문명과 인간이다. ‘생’과 ‘사’ 사이에서 쉽게 구겨지고 찢겨진 자연 속 동식물들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 한다. 과연 우리의 헤테로토피아는 대체될 수 있는 ‘무한함’일까.
나의 작품은 아름다운 헤테로피아, 자연물과 풍경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과 갱신을 거듭하는 삶의 고리가 언제 끊어질지 모르
는 위태로운 상황을 경고하는 것에 가깝다. 동시대 삶에서 바라보는 도시와 자연, 사회, 인간에 대한 이면을 탐구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공간으로 구현한다. 작품 속 제시된 헤테로토피아 공간은 무엇이든 이뤄지고 갖춰진 완벽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로 육
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섬뜩하리만큼 빠르게 소멸되고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소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에겐 육체적, 정신적, 이념적으로 낙원을 갈망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고, 이에 대해 시간을 쏟아 치열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
다. 그리고 그 낙원은 평범한 삶, 우리의 아주 가까이에 공생하고 있다.
-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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