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유재성 개인전 2023. 8. 24 – 8. 30 갤러리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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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이제까지 세상을 바라다보는 나의 관점이라는 것들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훈련된 것이거나 비판 없이 다
른 이들에게 주워들은 잡다한 것들이었다. 맞닥뜨린 상황 전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정리되지 않은
정보에 일부분으로 판단하곤 했다.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상황을 판단하려 했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계
의 다양성을 느껴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경험하려는 시도는 부족하였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감정들을 체계
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지난 8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질문하고 경험하
는 계속되는 과정들이었다. 어떤 때는 확실하게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느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희뿌연 안갯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알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행하였던 무지한 말과 행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 속에서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일 년 동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격리하는 기간이었다. 남쪽 끝 해남의 임하도라는 섬에서 나를 지
켜보면서 부지불식 중에 습득되어져 있는 정리되지 않은 지식의 조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낯선 상황들은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했지만 이젠 그런 광경들이 반갑다. 끊임없이 맞이하는 다양한 광경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려 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집중해서 성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려 하는 관
심의 확장성의 한 부분임을 표현하는 것 임을 배운다. 생활 속에서 생기는 불안한 감정들에 흔들리지 않고 상
황에 대한 나만의 이해를 통해서 새로운 조화로움을 깨닫고 생활의 평정함을 유지시켜 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이 풍성하다는 것은 다양함에서 연유되지는 않는다. 한 가지의 일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그것에 얼마
나 관심을 가지고 임하는 야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만족은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
인 것이 더 풍성함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그리려고만 했던 지나간 날들이 무척이나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런 날들에 감사하는
시간도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광경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궁금해졌다. 왜 예쁘지, 무
엇 때문에 그렇지, 어떡해서 저리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그림을 그리는 일로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저
좋아서 생기는 재미있는 호기심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보려 한다.
- 유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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