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김지언 초대전 2025. 3. 19 – 4. 1 갤러리쌈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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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언 서양화가의 「C-apple」 展
디지털 숲을 사유하는 사과
작가 김지언의 과일가게에는 ‘C-apple’이 구름처럼 떠 있고, 다향(茶香) 짙은 명상의 자리가 펼쳐진다. 그녀
에게 사과는 ‘이브의 사과’에서처럼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이거나 자아 또는 타인, 우리를 상징한다. 때
론 춘앵(春鶯)의 서사로 여겨지기도 하고, 일상이 신앙과 연결되는 분위기는 ‘지혜로운 변화를 위한 사과’
의 은유로 자신과 이웃을 보호하는 모성 이미지를 소지한다. 사과들이 일구어 가는 세상은 언제라도 동화
(童話)로 번질 자세를 보인다.
2024년 신작으로 구성한 「C-apple」 展은 부엉이처럼 지혜롭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사과의 정
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탐구한 결과물이다. 무용에서 번진 컨템포러리가 착색된 C-apple(Contemporary
apple)은 동시대의 사과 즉 작금의 현대인을 다루면서 작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내보인다. 김지언은 여성
작가의 깊은 신앙을 얹고 자존을 지키려는 규범을 탑재하면서 각양각색의 사과를 탄생시킨다. 김지언은 수
양버들 같은 서사를 늘어뜨린다.
작가는 느긋하게 미풍에 젖어 낭만을 구가하는 서정 시대를 건너왔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내면서 익숙한
것들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한 급변 양상에 혼란을 느낀다. 느릿한 음률의 아스라한 추억이 함부로
다루어지고 미지의 세계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듯한 경험은 작가에게 자아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C-apple」 展이다. 작품 속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정
체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서양화가 김지언은 여성성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추상적 전법(戰法)의 불투명으로 이타적 호기심을 생산한
다. 비 오는 날에도 맑은 날의 인공광을 끌어다 쓰는 여유로 마음의 변덕을 차단한다. 믿음으로 일하는 자
유인은 도회의 한가운데에서도 변두리의 서민적 아름다움을 길어 온다. 김지언의 사과적 진취는 본디 북악
(北岳)을 흠모하면서 발아되었다. 그녀의 과수원길은 삶의 개울을 지나 디지털 숲에 이르러 태초의 생명과
에너지의 시원으로서 사과를 떠올린다.
김지언은 선홍에서 자주에 이르는 열정의 순간에도 지혜의 새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파격은 깊이감
이 있는 사유였다. 「C-apple」 展은 그린에서 그랑 블루에 이르는 색의 반란을 골드로 잠재운 색 전투에 관
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오방(五方)의 한삼(汗衫)을 수용한 분홍이 봄의 사과들을 몰고 봄나들이의 즐거
움을 이끌 것이다. 작가 김지언이 평생 동지들인 사과들과 봄의 제전을 펼칠 쌈지밭 삼월에는 추위를 털어
낸 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작가는 처용설화와 AI라는 디지털 풍랑을 탄 현대인을 담론으로 설정한다. C-apple은 분주한 시·공간 속
에 가짜가 판치고 진짜가 바보스러워 보이는 현실의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현자(賢者) 같은 사과에
집중한다. 상상은 가로와 세로, 안과 바깥, 거리감과 높이감을 구사하며, 화적 묘미와 신비감을 구축한다.
「C-apple」 展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곱게 털어낸다. 대지의 약동을 불러오면서 따뜻한 인공광의 감도
를 느끼게 하는 전시회에 기대감이 인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