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김연순 2024.08.07Wed ~ 08.13Tue 인사아트프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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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어느 초겨울 우연히 학교근처 ‘솜타는집’을 지나다
바퀴같은 기계에 솜이 만들어져 쌓여지는 모습을 보고 작품구상을 하게 되었다.
솜틀집 내부를 꽉채운 하얀솜들의 모습이란 나에게 감동과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함이 있었다.
부드럽고 포근하고 순수한 미지의 세계
솜은 유년시절의 겨울이 다가오면 어머니께서 겨울나기 준비로 솜이불을 만들던때
솜의 부드러운 감촉과 포근함 때문에 이불위로 뒹굴며 어리광을 부리던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에 멈추어져 있다.
인생에서 가장 삶이 힘들고 벅찬순간에 솜작업을 하면 아품이 순화되고 도리어 내면의 힘이 채워지곤 했다.
젊은날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첫아이의 임신기간동안 그토록 힘들고 벅찰때 솜작업은 조형과 간절함이 어우러져
멋진 작품으로 만날 수 있었다.
목화솜은 재료의 한계가 있어 작업할 때 여러고민을 한 끝에 펠트, 곧,
양모솜의 색상과 질감을 함께 써서 작품으로 연결시켰더니 지금의 모습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양모솜과 목화솜을 펼치고 뭉치고 하는 과정속에 둥근이미지의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사과이미지의 오브제로 연결되어져 모든 칼라의 사과를 만들고 그려가며 작품을 채워가고 있다.
이런 과정중에 만들기만 하지말고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어
나이 50이 훨씬 넘어 새로운 사과를 그리고자 도전에 나선지 7년, 오늘에 이르렀다.
한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잉태작업이며 생명의 환희이다.
작은 나무가 자라서 잎이나고, 꽃이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마치 내가 솜틀집의 솜을 작품으로 만드는 행위와 같은 것이라 느끼기에 충분함이 있었다.
그것을 바로 無에서 有를 창조하고 해내고 버텨내는 생명력인 것이다.
내 작품속의 사과는 단순히 나무에 달려있는 겉모습의 그저 그런 사과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일구는 내면이 따뜻하고 진실되고 행복이 충만한 모습으로 꽉채워진 사과이고 싶어 그리고 또 그려가고 있다.
한 나무에 달려있는 저 사과는 어제의 사과가 하루를 살아내서 내일의 또 다른 새로운 사과로 매일 자라고 익어가듯
나는 그런 사과를 닮아가며 함께 익어가고 성장하는 현재의 내 모습이길 기대하며 꿈꾼다.
그러기에 오늘 현재 만들고 그리는 사과작품 제목은
“나 여기 서 있네” 이다.
I’m Standing here.
2024년 7. 25
서초동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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