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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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先代)가 미상이란 이유로 두 개파는 불참하였다“(족보서문)
동참하지 아니한 2개파는 자신들이 김추(金®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대동보 간
행에 불참.
선산김씨는 경상도지방의 남종파와 함경도지방의 북종파가 숙질지간에 시조를 달
리하여 오다가 창관(創貫)이래 족보다운 족보인 대동보를 처음 간행하면서 각종 고전
고증문헌(各種 古傳考證文獻)에 선산김씨 시조는 원성왕9세손 김한충(金漢忠) 이라고 기
록되어 전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계가 전혀 다른 경순대왕 제8자 김추(金鍾)를
시조1세로 허위 날조한 족보를 간행하면서 김기(金起)는 1세에서 18세로, 김성부(金
成富)는 1세에서 17세로함3)
m.각종 문헌을 중심으로
1. 구암집(久唐集).규장각 도서
서기 1789년(聖上 13년 己西) 발행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금성 정범조(丁範祖) 근서
서족보후(書族譜後)
전략,“원조고 휘 한충이등극사 유주로 부경 우풍재불반 자손이 등주일위기진운(遠祖考 호 漢忠以
登極使 由舟路 Sb京 遇風文不返 子퓨以 登舟日爲忌辰£)”이하생략
2. 구암집(久慮集).규장각 도서
서기 1789년 (숭정3기유(崇頓3己西) 발행
청풍(淸風)인 김종수(金鍾秀)근서
전 생략,“원조고 휘 한충이 등극사 운운...”위 1항과 1장1항 선산김씨 족보 서문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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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산김씨 측에서 많은 고증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하여 그 문헌을 확인하기 위해 2000. 9.22. 삼척김씨 대종회 회장
을 비롯하여 임원진 8명이 대구에 있는 선산김시 대동 종친회 사무실을 방문하였을 때 선산김씨 회장과 임원진 7명
도합16명이 합석한 자리에 많다던 고증문헌은 제시치 못하였다. 1986년도 대동보 간행시 경순왕의 제8자 김추(%)
를 시조로 하기 위한 남종파와 북종파 간에 찬반 다툼이 3년여 동안 있었다고 하면서 북종파 때문에 망신하게 되었다
고 말하였다.
4) 위 2권의 구암집은 김취문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유집(휴)을 모아 편찬한 도서임. 위 양 도서에도 시조 김추(M)란
기록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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