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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1 Buried Treasure
Background Knowledge
<해적의 유래>
해적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기원 전부터로 추정되며 해상
교통의 역사가 곧 해적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바이킹은 8-10세기 영국 해협과 유럽 해안지방에서는 공
포의 대상이었고, 북쪽 발트해 지역에는 슬라브 해적이 해
상을 장악했다. 무법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해적이 항상
국가나 지방권력과 대치관계에 있었던 것만은 아닌데, 신
대륙과 식민지를 놓고 유럽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16세기
당시 영국과 스페인은 적대국의 선박을 약탈해도 좋다는 국왕의 특허장을 자국의 선박들에게 발부했
다. 이에 따라 군함이 아닌 민간 선박들에 의한 해적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됐고, 1588년 영국이 스
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것도 이들 민간 약탈선 출신들이 적기 않았다.
이어 17세기 유럽 해역이 안정되자 해적들은 공권력
공백 해역이었던 신대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는데 요
즘 개봉된 해적 영화들의 무대이기도 한 카리브해가 주
요 해적 출몰 해였었다. 요즘 해적들도 „ 해골 깃발‟을
달고 다닐까? 해적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해골 깃발의
유래는 18세기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카
리브해 에서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
의 해적선들이 출몰해 당시 신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두
고 있던 스페인 선박들을 괴롭혔는데 여기 가세한 것이 현지 인디오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의 점령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자 바다로 진
출한 것이었는데, 이들 인디오 해적 중 일부가 교차된 사
람의 뼈 모양 위에 해골이 놓여 있는 툴텍 족의 신전 문
양을 모방해 깃발로 내걸었고, 그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깃발은 약탈대상 선박들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조성해 선
원들을 당황케 함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냈던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해골 깃발이 빠르게 번져나갔고,
해적선의 상징처럼 됐다는 것이다.
-2-
Background Knowledge
<해적의 유래>
해적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 기원 전부터로 추정되며 해상
교통의 역사가 곧 해적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바이킹은 8-10세기 영국 해협과 유럽 해안지방에서는 공
포의 대상이었고, 북쪽 발트해 지역에는 슬라브 해적이 해
상을 장악했다. 무법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해적이 항상
국가나 지방권력과 대치관계에 있었던 것만은 아닌데, 신
대륙과 식민지를 놓고 유럽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16세기
당시 영국과 스페인은 적대국의 선박을 약탈해도 좋다는 국왕의 특허장을 자국의 선박들에게 발부했
다. 이에 따라 군함이 아닌 민간 선박들에 의한 해적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됐고, 1588년 영국이 스
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것도 이들 민간 약탈선 출신들이 적기 않았다.
이어 17세기 유럽 해역이 안정되자 해적들은 공권력
공백 해역이었던 신대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는데 요
즘 개봉된 해적 영화들의 무대이기도 한 카리브해가 주
요 해적 출몰 해였었다. 요즘 해적들도 „ 해골 깃발‟을
달고 다닐까? 해적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해골 깃발의
유래는 18세기 초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카
리브해 에서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
의 해적선들이 출몰해 당시 신대륙에 많은 식민지를 두
고 있던 스페인 선박들을 괴롭혔는데 여기 가세한 것이 현지 인디오들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의 점령으로 생계의 터전을 잃자 바다로 진
출한 것이었는데, 이들 인디오 해적 중 일부가 교차된 사
람의 뼈 모양 위에 해골이 놓여 있는 툴텍 족의 신전 문
양을 모방해 깃발로 내걸었고, 그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
깃발은 약탈대상 선박들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조성해 선
원들을 당황케 함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냈던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해골 깃발이 빠르게 번져나갔고,
해적선의 상징처럼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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