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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1 Who Will Get the Gold?
그들과 대적하기에 병력의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피사로는, 파나마로부터 증원군을 요청하기
위해서 일부는 파나마로 돌려보내고 '이슬라 델 가요(Isla del Gallo, 닭의 섬)'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배가 돌아오자 피사로와 함께 남아 있던 사람들은 힘들고 지친 나머지
파나마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피사로의 결심은 확고했다. 의기소침해진
동료들 앞에서 피사로는 해안가 모래밭에 선을 긋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동지들이여, (선
바깥쪽을 가리키며) 저쪽은 죽음, 고난, 굶주림, 헐벗음, 폭풍우를 의미하고, 이쪽은 편안함을
의미한다. 저쪽을 선택하면 그대들은 파나마로 돌아가 가난해지는 것이고, 이쪽을 선택하면
그대들은 부를 얻을 것이다. 훌륭한 스페인인으로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
피사로의 외침은 단호했다. 결국 12명의 추종자가 남았는데, 후에 이 12명의 추종자와 피사로를
'이슬라 델 가요의 13인'이라고 불렀다. 그 후 피사로는 파나마 총독의 증원군의 도움을 받아 잉
카의 도시 툼베스에 상륙했다.
<피사로의 불타는 정복욕>
툼베스에 상륙한 정찰대는 잉카인이 가지고 있던 많은 양의 금과 은, 그리고 화려한 복장 등에
대해 피사로에게 보고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잉카문명에 대해 보고 받은 피사로는 자신의 정복욕
을 더욱 더 불태웠다. 피사로는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갔다. 왕에게 정복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1532년 피사로는 63명의 기병과 200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잉카제국을 정복하러 페
루로 갔다. 당시 잉카제국은 우아이나 카팍 황제가 죽자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여 있었
다.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인 우아스카르는 그의 이복형 아타우알파에게 왕위를 찬탈당했고, 우아
스카르와 그의 가족은 모두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이렇게 부당하게 왕위를 찬탈하여 잉카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아타우알파는 카하마르카라는 도시의 중앙광장에서 피사로 일행을 만났다. 아타우
알파는 피사로가 이끄는 정복자들에게 커다란 황금 술잔에 담은 옥수수술(치차)을 제공했다. 정
복자들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위협에 가까운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이렇게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피사로와의 1차 만남이 끝나고, 그 다음 날 피사로는 곧바로
황제를 납치하기로 결정했다. 2차 만남에 나온 아타우알파 황제의 행렬은 장관이었다. 황제는 앵
무새 깃털로 호사스럽게 장식한 가마에 올라탄 채, 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의상을 걸친 근위병들
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피사로는 수백 명의 부하들을 주변 건물에 매복시켜 놓았다. 이윽고 사제
가 원주민 통역자를 데리고 나와서 황제 앞으로 나가 한 손으로 성호를 긋고 다른 손으로 성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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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대적하기에 병력의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피사로는, 파나마로부터 증원군을 요청하기
위해서 일부는 파나마로 돌려보내고 '이슬라 델 가요(Isla del Gallo, 닭의 섬)'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배가 돌아오자 피사로와 함께 남아 있던 사람들은 힘들고 지친 나머지
파나마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피사로의 결심은 확고했다. 의기소침해진
동료들 앞에서 피사로는 해안가 모래밭에 선을 긋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동지들이여, (선
바깥쪽을 가리키며) 저쪽은 죽음, 고난, 굶주림, 헐벗음, 폭풍우를 의미하고, 이쪽은 편안함을
의미한다. 저쪽을 선택하면 그대들은 파나마로 돌아가 가난해지는 것이고, 이쪽을 선택하면
그대들은 부를 얻을 것이다. 훌륭한 스페인인으로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
피사로의 외침은 단호했다. 결국 12명의 추종자가 남았는데, 후에 이 12명의 추종자와 피사로를
'이슬라 델 가요의 13인'이라고 불렀다. 그 후 피사로는 파나마 총독의 증원군의 도움을 받아 잉
카의 도시 툼베스에 상륙했다.
<피사로의 불타는 정복욕>
툼베스에 상륙한 정찰대는 잉카인이 가지고 있던 많은 양의 금과 은, 그리고 화려한 복장 등에
대해 피사로에게 보고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잉카문명에 대해 보고 받은 피사로는 자신의 정복욕
을 더욱 더 불태웠다. 피사로는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갔다. 왕에게 정복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1532년 피사로는 63명의 기병과 200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잉카제국을 정복하러 페
루로 갔다. 당시 잉카제국은 우아이나 카팍 황제가 죽자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여 있었
다. 우아이나 카팍의 아들인 우아스카르는 그의 이복형 아타우알파에게 왕위를 찬탈당했고, 우아
스카르와 그의 가족은 모두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이렇게 부당하게 왕위를 찬탈하여 잉카제국을
통치하고 있던 아타우알파는 카하마르카라는 도시의 중앙광장에서 피사로 일행을 만났다. 아타우
알파는 피사로가 이끄는 정복자들에게 커다란 황금 술잔에 담은 옥수수술(치차)을 제공했다. 정
복자들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위협에 가까운 강권에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이렇게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피사로와의 1차 만남이 끝나고, 그 다음 날 피사로는 곧바로
황제를 납치하기로 결정했다. 2차 만남에 나온 아타우알파 황제의 행렬은 장관이었다. 황제는 앵
무새 깃털로 호사스럽게 장식한 가마에 올라탄 채, 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의상을 걸친 근위병들
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피사로는 수백 명의 부하들을 주변 건물에 매복시켜 놓았다. 이윽고 사제
가 원주민 통역자를 데리고 나와서 황제 앞으로 나가 한 손으로 성호를 긋고 다른 손으로 성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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