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책친글친 OT&2차월(확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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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 독서&글쓰기코칭 책친글친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기쁨일 뿐 젊은이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대로 뒷간
마당 가에 방치되었습니다.
나의 존재는 곧 잊혀졌습니다.
버려지고 잊혀진 자의 가슴은 무척 아팠습니다. 항아리가 된 내가 그 무엇을 위해 소중하게
쓰여지는 존재가 될 줄 알았으니, 나는 버려진 항아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면 빗물이 고였습니다.
빗물에 구름이 잠깐 머물다가 지나갔습니다.
가끔 가랑잎이 날아와 맴돌 때도 있었습니다.
밤에는 이따금 별빛들이 찾아와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만일 그들마저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는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뜨거운 가마의
불구덩이 속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하루는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서 깊게 땅을 파고는 모가지만
남겨둔 채 나를 묻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땅속에 파묻힌 나는 내가 무엇으로 쓰여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이제서야 내가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남을 위해 무엇으로 쓰여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그저 한없이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감나무 가지 위에 휘영청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젊은이의 발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가슴을 억누르고 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젊은이의 발걸음소리는 바로 내 머리맡에 와서 딱 멈추었습니다.
나의 가슴은 크게 고동쳤습니다. 달빛에 비친 젊은이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나는
고요히 숨을 죽이고 젊은이를 향해 마음속으로 크게 팔을 벌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젊은이는 고의춤을 열고 주저 없이 나를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아, 나는
그만 오줌독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슬펐습니다. 아니, 슬프다 못해 처량했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며 열망해온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싶어 참담했습니다.
젊은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젊은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젊은이의 아이들도, 가끔 들르는 동네 사람들도 오줌을 누고 갔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 나는 오줌독이 되어
가슴께까지 가득 오줌을 담고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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