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메타코칭 공토 2024-12 챌린지 해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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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코칭 인지훈련                                                                     챌린지 2024-12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메타기억력            - 중심 단어 5개를 적고 내용을 줄거리로 만들어 본다.


                                                         봉수대




                  봉수대는  전국  주요  지역의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했던  통신  시설로,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서  외적이  침입하거나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  소식을  빠르게

               임금에게 전하였다.

                  봉화는 밤에 피워 올리는 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낮에 올리는 연기도 포함해서

               ‘봉화’라고 불렀다.
                  봉수대에는  4~10명의  봉수군과  2명의  오장(봉수군을  통솔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봉수대  부근에는  임시로  집을  짓고  각종  병기와  생활  용품을  갖추어  이들이  생활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식량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추위,  배고픔  등으로  봉수군이  도망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 위급한 때에 봉화를 올리지 못하여 외적의 침입에 늦게 대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봉수는  횃불의  개수로  내용을  전달했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가 벌어지면 5개의 횃불을 올리도록 했다.

                  봉화는  전국적으로  다섯  군데의  방향에서  중앙의  목멱산(지금의  서울  남산)으로  전달되었다.

               강원,  함경,  평안  등  북쪽에서  오는  3가지  봉화는  여진,  몽고,  중국  등  북방  민족의  침입을  알렸고
               경상,  전라  등  남쪽으로부터  오는  2가지  봉화는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적이

               침입했는데  안개,  구름,  비바람  등으로  봉수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화포를  쏘거나  기를  올려

               알리거나 봉수군이 직접 달려가 알리도록 했다.
                  고종  31년인  1894년,  근대적인  전신,  전화가  들어오면서  봉수  제도는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봉수대는 지방 기념물로 지정하여 각 도와 시에서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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