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강화산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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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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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원 “우연의 지배 - 원시적 표현주의”
글/ 민동주 (미술 비평가)
우연의 지배라는 대전제 아래 “고요와 움직임”을 주제로 했던 강구원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이번 작업 “우연의 지배 - 원시적 표현주의”는 그 스타일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명상 속에 스스로를 정화하는 자세로 정성들여 다듬은 바탕 화면과 그 가장자리에 있는 수직
과 수평의 선들이 이루는 사다리 모양의 형상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느슨해진 선과 색이 만들
어낸 색면들이 어지럽게 난무한다. 단단한 수면 위에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이 일순간에 깨어지고
금방이라도 해체될 것 같은 형상들이 중심으로 돌진하여 불안정한 형태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잔잔한 수면 아래 꿈틀대던 어떤 것이 고요함을 깨고 물 밖으로 튀어 나온 모습이다. 고요하던 수면
의 평화는 자취를 감추고 바다는 사정없이 출렁인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이던 상대적으로 가볍고 맑
았던 색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검은색과 회색 등 무겁고 탁한 색들이 중앙에 떠 있는 듯하다. 오
랜 세월 작가의 작업의 근간을 이뤄 온 우연도 보다 다양해진 발현을 보여준다.
강구원 작가에게 있어서 우연은 작가가 시작한 작업을 완성해주는, 인간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곳
에서 작용하는 힘이며 대자연의 질서의 일부이고 절대자의 섭리다. 어떤 계획이나 의도가 앞서 작용
할 수 없는 우연이 작가의 의도와 만나 만들어내는 변화는 작가에게 우연을 지배하는 필연이라는 이
름의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질서를, 그리고 그 뒤에서 작용하는 절대자의 섭리를 인지하게 한다. 대자
연의 질서 속에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이 일으키는 경이를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우연이 주는
예기치 않았던 선물을 작품의 완성에 포함시키는 그가 공들여 여백을 가다듬는 대신에 특징을 잡아
내는 크로키를 하듯 탄성과 순발력을 이용한 보다 적극적인 표현 방법을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
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그의 행위 뒤에 감춰진 그의 정신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포착할 수는 없지만 그의 우연에 대한
적극적 기대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가 왜 그렇게 우연에 천착(穿鑿)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넘어서는 절대자의 섭리에 대한 작가 자신의
깨달음에 의해 생긴 겸허함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그의 바람이요 기도이기도 하다.
기호화된 형상 이미지와 우연
작가의 작품에서 색채로 이루어진 면이나 붓질로 만들어낸 선들은 실제 사물이나 행위를 형상화하
고 있다. 형상화는 구체적인 목적을 갖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목적이나 의도와 무관한 우연과는 서
로 갈등 관계에 있다. 하지만 심상이나 정신은 정형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얼마간의 우연의 작
용을 허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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