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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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브레데(W. Wrede), 슈바이처(A. Schweitzer) 등이 이러한
            전통적 칭의론에 대해서 심각한 비판을 가합니다. 그들은 대략 두세 가지의 신학적 근거를
            가지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첫째, 칭의론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경우가 바울의 서신들에만 나오는데, 그것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빌립보서 3장에서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전·후서에
            는 나오지 않고, 고린도전·후서에는 칭의론의 언어가 두어 번 나오기는 하지만 전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칭의론은 바울 복음의 제한된 표현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루터 이래 전통적으로 개신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칭의론으
            로 바울 복음을 이해할 경우, 바울의 윤리적인 가르침과 연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칭의론에서는 윤리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죄에 대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행위와 관계없이, 율법의
            행위 없이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종말에 최후의 심판에서 그것이 확인될 것이라면 의인으
            로 사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윤리적 가르침을 낳지 못
            하는 칭의론이 바울 복음의 중심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3:5~8과 6:1은 바울의 ‘율법의 행위 없이, 오직 은혜로만/믿음으로만’ 칭의 됨의 복
            음이 의로운 삶, 곧 윤리적인 삶을 장려하지 않고 도리어 훼방한다는 비판이 이미 바울 당
            시에 제기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오직 은혜로만/믿음으로만 의인이 되고 구원받는
            것이라면 죄를 더 짓자.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더 크게 드러날 것이 아니냐?”
            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믿음으로 의인 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설명함으로써 답합니다.
            그 답을 요약하면 “칭의 된 자는 믿는 자 될 때(곧 세례 때) 그리스도 안에 내포되어(in
            Christ) 그리스도와 함께(with Christ) 죄인(옛 아담적 사람)으로서 죽어 장사되고, 의인(새
            아담적 존재)의 새로운 삶으로 부활한 자라는 것, 그러므로 칭의 된 자는 이제 자기 몸을
            더 이상 죄의 노예로 바칠 것이 아니고(즉, 사탄의 죄의 통치에 순종해서 살 것이 아니고),
            의의 노예로 바쳐서(즉, 하나님의 의의 통치에 순종해서 삶으로써) 성화를 이루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의 이러한 내용에서 영감을 얻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바울이 로마서 3~5장에
            서 ‘칭의’를 가르치고는, 이어서 로마서 6~8장에서는 ‘칭의’ 다음에 오는 ‘성화’에 대해서
            가르친다. ‘칭의’ 된 자는 ‘성화’의 단계를 신실히 거쳐야 8:31~39에서 말하는 대로 최후의
            심판 때 ‘칭의’의 완성을 얻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그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영화’)”
            라는 이른바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론을 발전시켜 ‘칭의’ 자체가 윤리와 분리되
            어 있는 구조에 대해서 큰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많은 신약학자들은 종교사학파의 관점에서, 로마서 6장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법정적 범주로 설명하는 칭의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또 하나의 범주, 즉 그리스도
            와의 연합이라는 신비주의적 범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
            울이 윤리적 관점에서 칭의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받자, 로마서 6장에서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 내포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다는 신비주의적 범주로 설명하면서 답하고
            있다고 보고, 이 신비주의적 범주가 바울의 구원론을 설명함에 있어 더 중심적이고 포괄적
            인 범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구원론을 설명하는 데는 두 개의 체계들이 있는데, 하나는 ‘법정적 체계’
            (juridical system) 곧 칭의론이고, 다른 하나는‘신비주의 체계’(mystical system) 곧 ‘그리스
            도  ‐ 신비주의’(Christ-Mysticism, 그리스도 안에 내포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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