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초대 교회사-박용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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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어지는 사상적인 맥을 이해하면서 역사적인 흐름과 초대교회 역사를 이어온 사상가들을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
다. 때문에 박해와 이단들의 연구, 수도원 운동의 발흥, 감독제도의 발달, 그리고 초대교회 선교운동은 초대교회사에서
필수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주제들이다.
2. 초대교회사 문제
초대교회사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역사구성의 thesis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초대교회 최대의 주제였던 로고스다. 다시 말해 로고스는 초대교회를 이해하는 중심 열쇠이다. 1세기부터 진행된 기독
교 박해, 2세기의 속사도, 변증가, 이단, 3세기의 소아시아, 알렉산드리아, 서방신학을 형성한 교부들, 4세기부터 진행
된 삼위일체 논쟁, 기독론 논쟁, 이 문제들을 니케아회의(325)부터 콘스탄티노플 회의(680)에 이르기까지 로고스는 역
사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로마의 최대 종교 스토아주의는 점점 더 인격적인 종교로 탈바꿈했고 그 핵심에는 로고스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로고스에 대한 사상도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는 모
두 로고스 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토아 철학에서 로고스 사상이 차지하는 그 이상으로 당대 헬라철학 특별히 플로톤주의에는 로고스 사상이 더욱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로고스 사상은 기독교가 잉태되었던 그 시대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던 중기 플라톤사상과 그
후에 나타난 신플라톤주의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때문에 플라톤주의는 기독교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로고스의 성육신의 준비는 비단 그레코-로만 배경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유대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구약
의 선지자들의 예언들은 로고스의 오심을 예표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고, 그 때문에 당시 메시아 고대사상은 절정을 이
루고 있었다. 이런 성숙한 시대 속에서 로고스가 오셨던 것이다. 이처럼 초대기독교 핵심주제는 로고스이다.
이 로고스 사상은 예수님 당시는 물론 기독교가 태동되었던 제 1세기의 최대 주제였다. 제자들은 물론 성경의 모든 저
자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신 그분이 인간의 구주이시며 인류의 구원자라고 믿었다. 또한 로고스는 변
증가들에게도 최대의 주제였다. 로마의 클레켄의 서신에서,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서신에서, 폴리갑의 작품에서,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속 사도들의 작품과 사상에서도 로고스가 핵심에 있었다. 속 사도들의 로고스 사상이 점점 더 발전되어
하나의 틀을 갖기 시작한 것은 변증가들에 와서이다. 변증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로고스였다. 이 로고스 사상을
통해 그들은 기독교와 헬라철학을 연계시켰고 모세와 플라톤을 꿰뚫었으며 예루살렘과 아테네를 연결하였던 것이다.
로고스 사상은 2세기 이단들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2세기 역사무대에 등장한 일련의 이단들, 즉 영지주의, 발렌티누스,
마르시온이 갖고 있던 중심주제 역시 로고스였다. 기독교를 헬리철학의 틀 속에 뜯어 고친 나머지 기독교를 아예 헬라
화시켜버린 영지주의자들의 한결같은 특징, 곧 영육의 이원론 사상은 플라톤 사상에 뿌리내려져 있다. 이들은 일부 플
라톤 사상을 기독교화 시켰던 변증가들이나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달리 아예 전 헬라철학을 기독교화 하려고 하였다.
이런 일련의 도전을 맞은 교회는 전통적인 사도들의 신앙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 잘못된 신앙을 판단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과 부활과 재림을 담은 로마신경이 태동되었고, 이것이 오
늘날의 사도신경 형태로 발전되었다. 정경형성이 촉진되고 감독제도가 발달하고 신경이 발달되면서 2세기 말엽에 들어
서 초대교회는 하나의 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감독의 발달로 교구가 구체적으로 형성되었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 후대인들은 이들을 교
부라 불렀다. 최초의 교부는 이레니우스였다. 이레니우스의 사상을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구속사와 성서적인 전통 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