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이한우 개인전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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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글
초대의 글
요즈음 미적 감상은 그저 오롯이 감상자의 몫으로 돌리는 추세다. 그렇게 된 사
연은 인간의 인식, 지각의 정체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과학적 인식의
객관성조차 담보할 근거가 없는데, 애초에 주관성을 피할 수 없는 미적 감각, 감정
의 보편성을 주장하면서 감상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향유하리라 여겼던 게 어불성
설이었다. 물론 여기에 불을 지핀 건, 날이 갈수록 난해해진 예술의 정체성 때문이
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의 창조자인 작가마저, 자신의 작품에 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
작품은 탄생한 순간, 작가의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것"이라 말하면서 작품의 제목
조차 달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고 감상자가 멋대로 감상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작품의 탄생 배경,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보통 감
상자의 바람이다.
이한우 화백은 이번 전시회의 전체 주제를 <묵언; 默言>이라 명명했다. 이 개념
을 통해 자신의 예술작업을 보라는 뜻일 거다. 그러므로 감상자에게 오롯이 맡기
기보다, 그가 던지는 미적 메시지를 통해 해석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친절한 작
가다. 그런데, 이 <默言>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해 혼란에 빠뜨린다. <묵언>은 <
無言>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침묵의 말>이기도 하니, ‘말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할 말이 없다는 것인지’, ‘말하지 않으나 할 말은 있다’는 뜻인지,
헷갈린다. 그림은 시각적인 것이어서 청각적 요소를 포함하는 언어로 전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지만, 상형문자를 포함하여 언어의 기호적 표현은 시각성을 지
니고 있어 그림의 언어적 기능이 없다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림은 일반적으로 선,
형태, 색, 명암 등으로 우리의 감성에 미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게 기본이어서
언어적 의미는 부가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의 이미지가 던지는 메시지, 즉 언
어적 기능을 더한다면, 미적 감정은 감정에 끝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다. 때로는
정치적이기도, 역사적이기도, 철학적이기도 한 의미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이다.
이한우 화백이 <묵언>을 통해 전개하고 있는 그림의 전시는 미술의 가장 기본
적인 형태미와 더불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침묵하고 있
는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전시회에서 감상자로 나서는 우리의 몫이 되겠다.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감상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지 싶다.
(정보주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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