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손형권 작가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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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E STORY>
우리의 발길이 별반 닿지 않고 인간의 힘을 더하지 않은 자연은 무한한 인고의
몸부림과 절절한 생존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번 나의 작업은 꽃을 피워 지우고 잎의 싹을 틔우고 떨쳐내는 것이 숙명인 나무
의 의도되지 않은 자연 본질의 내면적인 흔적과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
들의 몸짓들을 통해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어떠한 울림들이 있는지 찾아 보려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된 사물의 실체적 고정관념을 한 조각씩 깨트리는 작업을 시도
함으로써 또 다른 시각의 분위기를 도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변화된 실체의
해석에 있어서는 고정화 또는 사유화 되어있지 않아 서로 다른 다양함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회화적 표현기법이 특별하게 전혀 새로운 화법이 아니어서 혹여
이 식상함이 관객의 관심과 호기심을 한 치도 아우르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가 앞선
다. 그렇다고 변화의 시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다름을 향한 방황의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작업의 주된 재료양식은 채색을 사용하지 않고 먹으로만 그리는 한국화 고유의 회화
(繪畵)양식을 선택했다. 먹은 본시 단일색이지만 먹색이 모든 색을 다 함유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고, 질료적(質料的)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인식되어져 왔다. 채색화가 지닐 수 없는 담담한 맛과 운치를 구현하기에 좋은 양식
이었던 것이다. 흑백으로 그려지는 작품 속에 이러한 의미의 전달을 위해 먹의
정신성을 되새기려 한다.
색은 각각의 독특한 성질과 느낌을 지니고 있지만 색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무한하여
개인의 경험이나 상상, 기억, 공상 등에 의한 연상 작용에 따라 본래와 달라져 보인다.
흑과 백 사이에도 많은 색들이 존재한다. 흑과 백의 극단의 한계는 명백하고 사이는
무한하다. 극단의 흑백은 자신의 존재만을 내세우고 있는데, 무한한 사이의 것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다양한 것들에 예민하게 살아나 미묘한 차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맛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나에게 수묵은 친근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부 대중에게는 생소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대상인 것은 자명하다. 우리시대에 맞는 다채로운 수묵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수묵의 정신적 유산을 되살려 현대의 미적시각에서 시대의 보편적인 공통
분모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이 확보되기를 바란다.
- 2022. 8 작가노트 中, 손형권 -
Son Hyung Gwon I THE TREE STORY Son Hyung Gwon I THE TREE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