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정순겸 작가 e-book 2022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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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몸짓(Gestures of existence),
카오스모스(chaosmos)의 세계
미술평론가 김월수(金月洙) 화가, 시인
현대미술은 정해진 틀이 없고 격식 파괴로부터 시작된다고 <존재의 몸짓>(2021)은 캔버스 위에 분할된 선을 긋고 일
본다. 현대미술의 특징은 감춤과 드러 냄으로 표현되는데, 상의 반복된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작가 영혼의 시스템 속에
이때 작가는 익숙한 것을 버리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서 실체, 존재 및 자아는 움직임의 언어이며 키워드 도구이
영역을 개척하 며 자기 정체성을 규명해야 한다. 혁신이란? 자 표현 대상이다.
고정관념 해체와 재창조의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의 본성으 들뢰즈 《차이와 반복》에서 “유목민이 새로운 영토를 만들
로 드러난다. 위대한 작가의 길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새 어도 그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어디 로든 떠날 준비가 되
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시하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 어있듯이 새로운 가치를 찾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
고 구현해야 한다. 고, 고유한 무늬를 찾아가려는 태도이다” 들뢰즈의 말처럼
유목민이 찾아가는 새로운 길 위에서 차이를 두고 차별화 (
정순겸 작가는 과거 작품인 <묵찌빠>(2003), <소유와 욕망 탈 코드화)하고 끝없이 욕망하듯 반복(새로운 것이 출현하
>(2006), <꿈꾸는 손>(2007), <무언극>(2011) 등 반추상 기 위한 조건일 뿐 아니라, 과거의 것 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
적 작품인 손의 이미지(언어)들을 통해 소유과 욕망 속 실존 한 조건)을 통해 숭고한 예술(재코드화)로 승화시킨다.
의 문턱에서 자아 찾기의 여정을 보여준다. 최근 작품인 <존
재의 몸짓> 시리즈(2021)는 의식의 지평선 아래로 변화 하 곡선 방향으로의 움직임과 깊은 심연으로부터 오랜 나무의
는 일상의 시간과 공간, 켜켜이 쌓인 무의식의 풍경 또는 그 나이테처럼 투영된 그림자의 풍경(風景)에서 인식하는 가시
너머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화석처 럼 축적된 3차원의 깊이 화된 실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되어 나타난 것으
를 느끼게 하는 색선추상(色線抽象, color line abstract) 로 본다. 『보이 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메를로-퐁티
의 세계를 완성한다. 처음 보는 듯 낯선 느낌에서 오는 신선 의 말처럼 ‘세계의 살(la chair)’이라는 개념을 들어 근원 이
하고 독특한 멋과 맛으로 우아한 풍경을 자아낸다. 라고 여겨졌던 인간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존재
론을 펼쳐 보이면서 모든 존재에게 모양을 부여하는 ‘존재의
특히, 이번 전시회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작품으 원소’라고 말한 것과도 상통한다.
로 존재의 몸짓을 표상한다. 카오스모 스(혼돈 속의 질서를
의미하는 말)의 세계 속에서 우주와 물질의 근원에서 보지 짧고 가느다란 진동 패턴은 마루와 골의 수에 따라 결국은
못한 또 다른 여 분의 차원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존재란 복 원의 모양으로 하나를 의미한다. 형이 상학의 세계와 사물
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이전의 모습과 그 운 동(파 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본 모습을 형상화한다. 순
동)을 의미한다. 추상의 흔적은 거의 무정형(無定型)에 가 수한 정신과 예술 본질에 접근하면서 감각적 형태를 제거함
깝고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반추하여 표 으로써 작가의 내면으로 다가선 모습이 보이는데, 모더 니즘
현된다. 과학적인 면에서 진공처럼 텅 빈 위상에 변환된 스 (기존의 도덕, 권위, 전통 등을 부정하고 새롭고 혁신적인 문
펙트럼과 같 이 단순화된 색(백색 또는 병합된 3가지 이상의 화의 창조를 추구하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과 추상표현주
색)과 추상적인 곡선의 이미지로 알고리즘화된다. 3D 프린 의 미술로 나아간다.
터를 활용하여 하나의 획처럼 흡수되거나 방출된 역동적인
선(線) 스펙트럼으로 2차원 평 면과 3차원 위상(phase)에 작가는 “소소한 일상의 같으면서도 다른 무한한 변화 속에
나타낸다. “예술가는 전달해야 할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 왜 서 반복되는 하루하루 축적된 시간과 공간의 움직임을 비정
냐하면 형태 를 다루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형 형 패턴으로 표현한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자
태를 통해 내적 표현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기 때 문이다.” 『 유로운 유목민처 럼 카오스모스 우주 속에서 존재의 몸짓으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칸딘스키의 말 로 실체를 구현하고 색선추상의 세계를 완성한다.
처럼 이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최소한의 빛 속에서 현미경을
통해 보는 듯한 이미지를 경험하게 한다.
J U N G S O O N _ K Y U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