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박일정 작가 e-book 원고 2022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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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노래
박일정의 작품은 어머니 구덕에서 나왔다
박문종 작가
갯뻘에 사는 게가 하나 둘 셋 넷... 열일곱 액자 틀에 가 같다. 괘도 수정이 불가피한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득 담겼다, 갯물이 들고난 자리 거기에는 작은 생명들의
천국이다. 게는 결코 옆으로 걷지 않는다.
게 모시조개 맛조개 망둥어 등등 아비가 지식에게 “너는 똑바로 걸어라 나처럼 옆으로 기
지 말고” 했다지만, 언젠가 그래도 먹고살려면 밥그릇,
게는 단연 갯뻘의 주인공이다, 작지만 등껍질이 단단한 찻잔 만들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 그냥 사람 좋게 웃고 마
갑각류 다리는 큰 집게발 작은 집게발 도합 열 개 모아 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미술의 기존 틀에서 이탈 독자
놓으면 소리를 낸다. 마치 외계 생명체의 신호음 같은 쓰 적인 형식을 택한 것이다. 더 이상 변죽만 울리는 작가가
스 사 사... 아닌 것이다. 그가 바른 것이다. 목포에 가면 째보선창이
라는 재미나는 조그만 포구가 있다.
사전적 이름은 칠게라고 하지만 지역마다 부르는 게 각
각 설농게 라고도 하고 뻘에 서식한다 해서 뻘떡 게다, 봄 지금은 그 흔적이 희미하지만 북새통을 이룰 때도 있었
날 보리 피기 시작하면 갯가에 맛 잡고 게 잡고 어머니의 다. 째보는 입술이 갈라지는 풍토병, 물과 뭍 그 사이 쫙
구덕에는 세상 소란 거기에 다 있다. 째진 지점 거기로 드나드는 모든 것들이 통과 의례하는
결정적 지점인데 작가는 그걸 살갑게 본 듯하다. 작업의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들고 게들은 집게발을 치켜들고 아 주 무대로 점찍고 있으니....
우성 강력 반발한다, 오래전 영산강을 막기 전 풍경이다.
그런 곳에서 유년을 보낸 작가의 감수성이 잠복기를 거 박일정은 2018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 작가로 참여하게
쳐 지금의 작업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되는데 작품 ‘풀다리’(1000x280x200cm. 점토소성,나
무, 2017~2018)를 내놓는다. 목 나무를 얼기설기 잇데
그러니까 박일정의 작품은 어머니의 구덕에서 온 것이 거기에 사람도 태우고 풀도 태우고 나무도 태우고, 온갖
다. 지평선 넘어 강과 들이 맏 닿은 곳 그는 평지 출신답 것들이 올라앉았다, 점토로 조물딱 거려 만든 가짜 사람
게 시선을 낮출 줄 알았고 낮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작가 들 색옷을 입고 나래비 섰다.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보
의 눈은 잔잔하지만 뜨겁다 이에 대한 그의 소회를 들자 이나 보기에 따라서는 무슨 용무를 보려고 차례로 기다
면 ‘게나 고동’이라는 말로 압축되는데 풀자면 게나 고동 리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망자들을 배웅하는 상여 목물
은 아무나 다가 된다. 작업의 요체인데 촌무지렁이 소시 들의 행렬 같기도 하고 산 넘고 물 건너 고비고비 인생
민 어디 사람뿐이랴. 이름 없는 풀 나무 갯가 것들 힘없 길이다.
고 가난한 모두를 아우르는 말에 다름 아니라 그걸 바탕
삼아 마치 변죽을 울리듯 자기 세계를 꾸려왔고 작품은 어디서 흘러들었을지 모를 목 나무대 한 대목 똑 뙤 ‘째보
자신의 공간에 대한 현지민의 보고서 같은 성격을 띠고 선창’(220x40x15cm. 점토소성, 나무. 2019) 지금 성
있다. 그의 도자는 물을 담지는 않는다. 완경 선생님 서실 한켠에 걸려 있다, 회색으로 도색한 벽
그리 높지 않은 자리에 비스듬히 40도 각도로 마치 작가
즉 용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한 의 비탈길처럼.
이력으로 봐서 자신의 작업이 회화적이었으면 하는 것 2020.10. 담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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