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이상구 작가 e-book 2022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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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關係)를 통(通)한
선(線)으로의 여행(旅行)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전봇대는 무심하다.
전봇대와 전봇대를 연결하고 있는 선들에 대해 그 누구도 눈여겨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관계(關係)의 선(線)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면 필연적으
로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의 총체적 삶의 방식은 개개인의 독립성이 아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연결고리로 즉 전봇대의 선(線)과 같이 연결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니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어쩌면 무심한 여정
의 반복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박제(剝製)화된 상태로 버려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전봇대는 오래전부터 박제되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몸속에 피가 흐르듯 전선들로 인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다. 이제 무심해 보이던 전봇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필연의 관계로 무한한 에
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작업 “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보다.....”라는 제목의 전봇대 시리즈는 겉보기엔
분명 단순한 선들이 이어지고 교차되면서 형상과 상징의 나열을 반복하고 있다. 그
러나 그 선들은 구체적으로 나의 삶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고스라니 품고 있다.
전봇대의 선들을 통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삶속의 이야기들
이 편안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작가노트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