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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오산의 연원
오산 연원의 시원은 유물로는 구석기, 문헌상으로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이는 『오산
시사』 시의 연혁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이 절(節)에서는 간략하게 정리하고 행정구역상 정식 명칭으
로 등장한 이후부터 다루기로 한다.
오산지역은 고구려시대(600년)에는 매홀군(買忽郡), 신라시대(757년· 경덕왕 16)에는 수성군(水
城郡), 고려시대(1310년· 흥선왕 3)에는 수원부, 조선시대 1899년 2월 1일에는 수원군 청호면(晴湖
面) 등 4개 면, 일제강점시대인 1914년 4월 1일에는 수원군 성호면(城湖面)으로 되었는데 이는 대한
제국시대의 어탄면(漁灘面)일부와 산성면(山城面)·청호면(晴湖面)·초평면(草坪面)·문시면(文市
面)의 4개 면이 합친 것으로, 1923년 당시 성호면 인구는 8천5백8명이다. 1941년 성호면에서 오산면
으로 개칭되고, 1960년 1월 1일 오산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7년 1월 1일에는 화성군 동탄면 금곡3
리가 편입되어 은계리(銀渓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9년 1월 1일 오산시로 승격되어 6개 동으로
출범하였으며, 1995년 4월 20일자로 평택군 진위면 갈곶·고현·청호리 일부가 편입되어 법정동 24
동 총면적 42,757㎢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총인구는 2019년도 12월 기준으로 226,379명이다.
수원군시대:4개면(산성면, 문시면, 청호면, 초평면)
「자료 : 오산시사편찬위원회(조선총독부 경기도 통계연보 1912) 」
제2절 오산시 승격 이전의 행정구역
행정구역의 개편은 일제의 한국강점(1910년)이 있은 직후 인 1914년 3월 1일부터 전국 대대적으로
실시한 면 및 동리에 대한 행정구역 통폐·합이다. 이는 행정의 편리함이나 능률성 보다는 이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자원을 수탈하려는 일제의 속셈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사전 토지조사와 측량작업
을 거쳐 면은 1914년에 완료되고 동·리는 1918년 토지사업 종료와 때를 같이하여 완료되었다.
1. 일제 강점기시대의 오산면(1941. 10. 1 ~ 1945. 8. 14)
오산이 행정구역상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915년 1월 29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4호
오산시사 ‘수원군내 동리의 명칭 및 구역’ 조정내역에서 나타난다.
조정내역의 성호면(城湖面)편을 보면 초평·청호·산성·문시면 등 4개면이 성호면으로 통합되었
제 고, 그전에 부르던 명칭에 리(里)를 붙여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경기도 고시 제4호 리 명 일람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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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용 중 ‘청호면 중 4동과 5동’을 ‘성호면 오산리’로 변경된 내용이 나온다. 비록 리(里)의 명칭이기는 해
도 「오산」이란 명칭이 행정구역으로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158 또 이 고시에는 수원군 성호면에 20개리의 명칭이 나오는데 이 리명(里名)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