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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격멸의 결전 총궐기대회가 개최되고, 학병 육·해군 특별지원병징집제도와 함께 농촌사회에도 유 245
언비어가 난무하였다. 일제는 결전증산에 매진할 것과 근로동원지도 요강을 만들었다. 오산면으로 역사
개칭한 이래 각 리마다 구장이 활동하여 노무동원과 배급공출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집성촌이 강하 / 유적
게 자리 잡고 항일의식이 소작인 농민들 간에 팽배된 상황에서 면장으로부터 구장(이장)으로의 권력
의 이동이 있기는 했지만, 마을 공동체의 내적 자율권은 파괴하진 못하였다. 오산지역에 사회주의 이 · 유물
념의 청년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지만, 토착 마을 공동체의 내적 자율권 자치권은 약화시키지 못하
였고, 일제의 통치기구도 강하지 못했다. 배타적 농촌마을에서 외지인 구장의 출현이 어려웠기 때문
이다. 오산지역에 친일세력에 대한 주민들의 보복이나 좌우세력 간에 큰 긴장이나 갈등이 없었던 이
유는 전통문화가 살아있고, 유교적 농촌공동체 안에 집성촌이 오산지역 외곽에 자리하고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유지했던 점이라 생각된다.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나 어둠이 가고 새벽이 되니, 마침내 식민
지 국가권력은 붕괴하고, 해방은 우리 앞에 빠르게 다가왔다.
[자료]
●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 1919년 11월 6일. 이성구 외 7인
판결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