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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배치, 시문기법, 기형 등이 유사하며, 기원전 4,000~3,600년 또는 4500~4,000년 으로 편년 27
되는 유물이다. 특히 가장동유적의 평저토기는 타래무늬가 표현되어 있는데, 암사동유적의 그것과 역사
매우 닮았다. 타래무늬 신석기토기가 나온 암사동유적 집터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가 기원전 / 유적
11)
4,490년에서 4,350년으로 나온 것을 참조하면, 오산 가장동유적 의 타래무늬토기도 비슷한 시기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그림 16) · 유물
12)
오산 가장동유적 신석기시대 유구의 절대연대측정 결과는 다음과 같다. 4-2지점 1호 소성유구
는 1886-1756B.C.(1σ, 68.2%)로 나왔으며, 5-1지점 1호 집터는 2855-2581B.C., 2839-2500B.C.,
2855-2581B.C., 2855-2581B.C.로 측정되었다.
이와같이 오산의 신석기문화는 가장동유적의 집터와 구덩이 등과 그곳에서 나온 빗살무늬토기를
통해서 매우 단편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점렬상의 타래문이 시문된 평저 빗살
무늬토기는 서울 암사동 신석기유적의 이른 시기의 유물과 관련되는 것으로 중서부지역 신석기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이다. 자료는 적지만 오산 가장동유적은 암사동유적과 더불어 중서부지역 최초의
신석기인들이 남긴 물질자료로 이해된다.
그림 17. 오산 가장동유적(서경문화재연구원 2013) 신석기시대 집터의 생활면 변화
1차 생활면에서 2차 생활면으로 변화된 것은 가옥을 고쳐서 다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 변화가 연속적인
것인지, 어느 정도 시기 차이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9) 임상택, 2006, 『한국 중서부지역 빗살무늬토기문화연구-문화변동과정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0) 소상영, 2013, 「14C연대 분석을 통한 중서부지방 신석기시대 편년 연구」, 『한국고고학보』 89.
11) 경기문화재연구원, 2008, 『오산 가장동 유적-가장지방산업단지 조성부지내 시·발굴조사보고서-』.
12) 서경문화재연구원, 2013, 『오산 가장동 유적-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조성부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