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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 2기는 일제강점기까지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으나, 이후 봉분은 파괴되고 문인석도 현재는
모두 유실되어 규모나 형태 등을 확인 할 수 없다. 시기에 대해서는 『水原郡邑誌』와 『京畿道 古蹟臺
帳』에서는 고려시대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백제 진사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거나, 문인석의 형태와 고려
왕릉의 분포를 통해 조선시대 분묘로 판단한 견해도 있다.
2. 독성여왕릉의 위치 검토 13)
독성여왕릉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지표조사 결과 등에 따른 이견은 있지만 문헌기록은 모두 고려
시대로 기록되어 있어 대체로 축조시기를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위치에 대해서 진남루의
남쪽으로만 되어 있고 일제강점기의 기록도 성호면 지곶리로 행정구역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현
재 독성여왕릉의 위치에 대해서는 크게 지곶동 폐고분이 위치하고 있는 지곶동 332번지 일원과 일명
14)
‘通峰’ 이라고 불리는 지곶동 359번지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지곶동 332번지 일원에 일제강점기의
고분 기록과 일치하는 지곶동 폐고분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토사학자의 지속적인 연구 15)
에 의해서 현재는 대체로 지곶동 359번지를 독성여왕릉으로 인식하고 있다.
현재 독성여왕릉으로 비정되는 지곶동 359번지는 독산성 남쪽 사면의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고 주
변은 모두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나 359번지만 원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목상으로도 359
번지만 묘이고 주변의 토지들은 답 또는 전으로 분류되어 주변 토지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
다. 최근 실시된 지표조사 결과를 보면 평면 원형으로 추정되는 봉분은 2기가 북동-남서방향으로 나
란하게 자리하고 있고 규모는 지름 7~10m 정도 추정된다. 그리고 봉분 주변으로 할석이 일부 확인
되는데, 무덤과 관련되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봉분의 잔존상태 등을 고려할 때 조선시대 후기
16)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현재의 잔존양상과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발굴조사 등 고고학적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지
곶동 359번지에 분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水原郡邑誌』와 『京畿道 古
蹟臺帳』의 기록과 상이한 부분들이 확인되어 문헌에 기록된 독성여왕릉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독성여왕릉의 위치를 살펴보면 『水原郡邑誌』등의 기록을 볼 때 독산성 남쪽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당시의 독산성 주변 지형도나 독성여왕릉이 표시된 지도 등이 남아있지 않
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그리고 현재 경작지에 둘러싸인 지곶동 359번지의 원지형도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비교적 지형의 변화가 크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의 지형도 등을 통하여 원지
오산시사
13) 독성여왕릉의 위치에 대해서는 최근 연구성과(이용범, 2018, 「독성여왕릉의 위치에 대한 재검토」, 『오산학연구Ⅳ』, 오산향토문화연구
제 소.)를 수정요약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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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14) 通峰은 通蜂으로도 불리며, 通蜂의 蜂을 針 또는 槍으로 해석하여 백제 진사왕의 죽음과 연관 있는 지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주10
의 논문.)
15) 임종삼, 2002,「백제구원행궁과 독성여왕릉의 정체」,『禿山城』, 오산문화원.,
________ 2007,『오산의 역사와 독산성』, 오산문화원.
452 16) 中部考古學硏究所ㆍ한신대학교박물관, 2016,『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정밀지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