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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민둥하여 막힌 데가 없는 곳을 찾아 진을 쳤다. 조선의 지형지물에 어두웠던 일본군이 아무래도 진                                         473
                  퇴가 용이한 도로 주변으로 사방에 시야가 트인 곳이나 산에 초목이 없는 사면이 트여있는 곳에 진을                                          역사

                  쳤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같은 곳이 오산 독성산성 주변에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다면 일본군들                                         /  유적
                  의 배치를 추정하는데 도움을 삼을 수 있다. 결국 일본군은 5일간의 수원 독성산성을 공격하다 크게

                  실패하고 피해만을 입은 채, 진영을 불태우고, 과천을 거쳐 한양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 유물


                  2) 독성산성 전투 이후의 독성산성

                    1592년(선조 25) 12월에 독성산성 전투가 끝이 난 후, 권율은 그 이듬해인 1593년 1월 중순까지는

                  독성산성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선조 26년 1월 11일에 명나라 경략의 병부주사(兵部主事)
                  인 원황(袁黃)에게 조선군의 전체 병력실태를 보고한 내용 속에서 확인된다.                       23)

                    다음의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선조 26년(1593) 1월 11일까지만 해도 전라도 순찰사 권율이 수원
                  부에 4천 명의 전라도 군사를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수원지역의 군민들은 어떻게 존재했는지 살펴보자. 위의 기록처럼, 당시 명나라 군대
                  에 보고한 조선군의 전체 병력수는 17만 2천 4백 명으로서, 그 가운데 경기와 충청도의 조선군 병력

                  은 약 25,700명이었다. 여기서 한양과의 하루거리에 있는 경기도 내 주둔 병력은 18,100명이었다. 그
                  가운데 전라도 순찰사 권율 휘하에 군사 4,000명과 전라 병사 최원 4,000명을 제외한 10,100명은 경

                  기도 군사와 의병들이었다. 특히 수원지역의 우성전 휘하 2,000명, 양근지역의 이일의 600명이 지역
                  의병들이었다.     24)



                                     표 1. 선조 26년(1593) 1월 현재 경기·충청도의 조선군 병력 현황

                     지역      주둔지         관직            지휘관           병력수(명)       거리/위치         비고
                                       전라 병사          최원(崔遠)          4,000       1일(서부)

                             강화부       경기 순찰사         권징(權徵)          2,000       1일(서부)
                                        의병장          우성전(禹性傳)         2,000       1일(서부)       경기의병
                             수원부       전라 순찰사         권율(權慄)          4,000       1일(서부)
                    경기도
                              양주        방어사          고언백(高彦伯)         2,000       1일(동부)
                             양근군        의병장           이일(李軼)            600       1일(동부)       경기의병
                              여주       경기 순찰사         성영(成泳)          3,000      1일반(동부)

                             안성군        조방장          홍계남(洪季男)           300      1일반(동부)
                             직산현       충청 병사          이옥(李沃)          2,800      2~3일(남부)
                    충청도
                             평택현       장관(將官)           미상           약5,000      4~5일(남부)
                     합계                                              약25,700




                  23) 『宣祖實錄』 卷34, 26年 1月 11日 丙寅.
                  24)  위의 안성군에는 경기도 조방장 洪季男 300명, 수원부에는 전라도 순찰사 權慄 4,000명, 강화부에는 경기도 순찰사 權徵 400명ㆍ창
                     의사 金千鎰의 전라의병 3,000명ㆍ의병장 禹性傳의 경기의병 2,000명ㆍ전라병사 崔遠 4,000명, 양주군에는 경기도 방어사 高彦伯
                     2,000명, 양근군에는 의병장 李軼의 경기의병 6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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