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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2. 경기남부-아산지역 원삼국시대 토기·철기의 시기구분(중앙문화재연구원 2013)





                    한편 토기와 함께 영남지역의 철기들도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음이 파악되고 있다, 그러한 철기들

                  은 목곽묘에서 자주 보이는 기종으로서 낙랑으로부터의 영향하에 제작되기 시작하여 한반도 남부지
                                                              13)
                  역에서 보급이 점차 확산되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철기의 도입과 관련해서는 『三國志』 魏
                                      14)
                  書東夷傳의 弁辰條 기사 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 볼 때 경기남부와 충남북부지역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의 유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적어도 기원후 2세기가 되면서 영남지역으로부터 토광묘라는 묘제와 토기·
                  철기를 수용해가면서 급진적인 성장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토기와 철기는 당시 이 지역

                  집단의 성격과 출자, 주변지역과의 관계는 물론, 시간적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를 볼 때 그러한 변화과정에서 이 일대에서 보다 큰 거점지역이 아산지역에






                  13) 金새봄, 2011 「原三國後期 嶺南地域과 京畿·忠淸地域 鐵矛의 交流樣上」, 『한국고고학보』 81, 한국고고학회.
                     이용범, 2015 「2~3세기 마한과 진변한의 철제무기 교류와 그 배경」, 용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4) “나라에 철이 나 한, 예, 왜가 모두 따라 쓰고...모두 철을 중국의 화폐처럼 사용하며 낙랑·대방의 2군에 공급한다.
                     ....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 ... 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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