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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아다리 개울(천) 205
마을 앞의 개천으로, 예전에 방앗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예전에 이곳은 징검다리가 있었다고 생활환경
한다. / 지명유래
한편 궐동에는 옛날부터 연안 김씨, 광산 김씨, 곡부 공씨 등이 대성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하였으
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을 찾아보기가 거의 힘들다. 특히
대호밭에 사는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장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는데, 호
랑이의 출몰과 관련하여 모두 폐가하여 이제는 장씨 집안사람들을 볼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외에
궐동에는 풍목골, 증산골, 석산골, 독골 등의 땅이름이 남아 있다. 궐동에 전하는 땅이름 가운데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화성궐리지』를 들 수가 있다. 『화성궐리지』에는 당시 이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중규면(中逵面)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홉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 구정촌(九井村)이라는 명칭을 비롯하여 문공산(文公山)의 지명이 나온다. 문공산은 오산화성궐
리사의 뒷산인 문산(文山)과 오산대학교가 들어선 자리의 공산(公山)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씨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공촌(孔村)이라는 지명도 나타난다. 『곡부공씨족보』에는
죽정이골, 죽쟁이골이라 불리는 죽정곡(竹靜谷)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 지역에는 소도둑이 소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초평(草坪) 죽정곡(竹靖谷), 초평(草坪) 궁허리(弓墟里), 독동
(篤洞) 후곡(後谷), 삼미면(三美面) 온정동(溫井洞) 등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금암리(錦岩里)에는
토끼산이란 의미의 묘산(卯山)도 기록되어 있다. 한편 문산(文山)을 민간에서는 당고개(堂峴:당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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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밖에 동탄면(東灘面) 금곡리(金谷里) 당곡(堂谷) 대암(大岩), 동탄면(東灘
面) 금곡리(金谷里) 당곡(堂谷) 소암(小岩) 등의 지명이 나타난다. 한편 『곡부 공씨 1936년 병자보』 진
사공현손휘호선파(進士公玄孫諱好善派) 기록에는 영조 때까지 궐리(闕里)라는 지명은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초평(楚坪), 당현(堂峴), 죽정곡(竹靜谷), 구정(九井), 중규(中圭) 또는 중규(中逵) 등으로 나타
나고 있다. 이로 보아 궐리라는 지명은 정조 때부터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현(唐峴)이라는 지명
이 나타나는데 이는 당고개인 당현(堂峴)의 오기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밖에 만의사양동(萬儀射陽洞)
이란 지명도 나타난다. 대호밭 『광산김씨족보』에는 죽담(竹潭), 궐리사 독골(篤谷), 사곡성암(寺谷星
岩), 초평면(草坪面) 궁허(宮墟), 금암동의 석산골(石山谷) 등의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이 밖에 노랑
굴, 증산골, 방아다리, 도리미 등의 지명이 존재하였거나 존재하고 있음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1) 文山俗稱堂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