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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가장천과 서동에서부터 흐르는 개울이 모여 오산천으로 내려가는 개천 위의 다리로, 연장 15m에 257
폭은 12.5m로 1994년에 완공되었다. 생활환경
이외에 벌음동에는 상정재, 가꿀우물 등의 땅이름이 전해오고 있다. / 지명유래
제4절 탑동(塔洞)
탑동은 탑이 있었던 마을이라 타마루, 돌모루, 석우리 등 돌과 관련 있는 여러 지명으로 불리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수성 최씨, 파평 윤씨, 전주 이씨, 수원 백씨의 족보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중엽부터
탑동이라는 지명이 나타났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 탑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러나 그 모양이나 크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고 탑이 세워졌던 자리를 탑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5층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탑동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는 1991년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수원 백씨, 전주 최씨, 전주 이씨, 파평 윤씨가 탑이 있는 이곳에서 1700년경 정착, 타마루라
하여 탑동으로 명칭이 바뀌기까지 탑에 분실을 항시 애석하게 여기던 전 주민들이 마을을 빛
내고 이끌어 주신 공적이 크고 훌륭한 어른과 1950년 6·25전쟁에 산화하신 유공자 및 건립에
도움을 주신 동민과 이곳을 고향으로 두신 분들의 이름을 새겨 마을의 상징이요 번영과 안녕
을 지켜줄 본 5층 석탑을 세워 후대에 같이 보존합시다.
그러나 다음의 ‘탑동의 탑돌이 이야기 전설’을 보면 이 전설의 내용이 더 신빙성이 있음을 알 수 있
다. 지금 탑동에 가 보아야 아무 흔적도 찾을 길이 없지만, 옛날부터 탑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들판에 덩그렇게 서 있는 탑은 야탑, 읍내에 서 있는 탑은 읍탑, 그리고 탑이 있는 곳을 가리켜 탑골
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산(옛 수원) 탑동에 있던 것은 읍탑에 해당되며, 그 탑에 대해 내려오는 전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때는 고려 초기였으며 개성에서 남쪽으로 진격을 하던 군사들이 지금의 군포 금정리까지 중
선으로 와서 광교산을 넘을 때는 음력 그믐밤이었다고 하며, 촌보를 옮기기가 어려웠다고 하
여 일부 척후병만이 사주 경계를 하면서 광교산 정상에 올라가 전방을 바라보았으나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잠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전방이 멀리까지 환해졌다고 한다. 척후병들은 너무
도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불빛이 비치고 있는 곳을 찾아가 보니 땅에 박힌 바위에서 서광이 비
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체하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니 곧바로 지휘관은 진격 명령을 내리
고 오산 쪽을 향해 진군하였다고 한다. 고려군은 천우신조로 얻은 기회를 놓칠세라 일사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