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오산시역사문화
P. 164

남아  있지  않다.



                  큰청이(마을)




                    큰  청호라고  불렀으며  청호동에서  큰  마을로  청호  1동을  부르던  말이었다.  큰  청
                  호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작은청이(마을)




                    작은  청호라고도  불렀으며  청호동에서  작은  마을로  청호  2동을  말하며  큰청이와
                  마찬가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호  호수  자리로  자연적  제방에  둘러싸여  있어
                  봄이면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농사에  이용되었고  고려시대부터  삼남대로  옆으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라  지나는  길손들이  마을  앞을  지날  때  주변  경치가  아름

                  답게  보일  뿐만  아니라  물이  맑고  깨끗하며  제방은  울창한  노송으로  장관을  이루어
                  바쁜  길손도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갔다고  전한다.





                  ★갈곶동(葛串洞)




                    평택군에서  1995년  4월  20일자로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오산시로  편입된  마을
                  로,  1899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의하면  청호면  갈곶리로  당시  청호면의  방
                  리  중에서  첫  번째  마을이었으나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청호,  고현  일부

                  를  병합하여  평택군  진위면  갈곶리로  불렸으며,  늦은  감은  있으나  원래대로  오산시
                  로  편입된  마을이  되어  다행스런  일이  되었다.  마을  지명에는  여러  가지의  설이  전
                  해지고  있다.  일설에는  지형이  곶(串)으로  되어  있어  갈곶,  갉지라고  하였다고도  하
                  고,  또한  일설에는  마을의  지형이  높은  산맥이  뿌리를  내리고  길게  뻗어  나간  칡넝

                  쿨처럼  생긴데서  칡갈(葛)자를  따서  갈곡(葛谷)이라  부르다  갈곶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일설에는  옛날  한  스님이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고  마을의  서쪽에  있는
                  뇌머리산(잠두산)의  허리가  잘리거나  산의  머리  쪽을  갈가  먹으면  마을이  가루가
                  되거나,  과부가  많이  생기거나  동네가  빈곤하게  된다는  말에서  연유하여  가루→  가
                  릇→  갈곶으로  변했다고  전하기도  하며,  그리고  마을의  생김새가  삼태기  형태의  바
                  깥쪽  모양이라  하여  재산을  모으면  마을을  떠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재물이  모두  새

                  어  나간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혹,  갈곶은  남쪽을  이르는  우리말  ‘갈’과  고
                  개의  줄임말  ‘곶’이  합쳐진  말이라고도  한다.



                                                           164
   159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